왕실 수라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대장금〉(2003~2004)에는 ‘요리는 맛을 그리는 것’이라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잠시 미각을 잃게 된 주인공 장금이 크게 상심해 있자 스승인 한 상궁이 장금을 격려하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다. 그렇다. 확실히 맛은 그려내는 것이고, 맛의 미묘한 균형을 연출하는 것은 조미료이다. 소금이나 생강 같은 조미료 없이 좋은 맛을 그려낼 수 있을까? 조미료는 식탁이라는 극장의 훌륭한 연출가인 것이다. 조미료는 미각을 세련되게 만드는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시대가 지나면서 그 가짓수가 계속 늘고 있다.
--- 「땅과 바다에서 조미료 찾기」 중에서
레콘키스타가 한창 진행 중이던 무렵, 스페인에서는 이베리아반도의 경제적 실권을 잡고 있던 유대인을 탄압하여 재산을 몰수한 뒤 그것을 군자금으로 이용하여 이슬람교도와의 전투를 이어나갔다. 이슬람교도에게는 처음에는 융화 정책을 썼지만 유럽에서 종교 개혁의 파도가 일자 가톨릭을 강요했다. 개종을 원하지 않았던 수백만 명의 이슬람교도가 바다 건너 모로코로 도망쳤다. 일련의 과정에서 유대인과 이슬람교도를 구별하는 데 돼지고기가 큰 역할을 하였다. 유대인과 이슬람교도 모두 종교적으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줬을 때 먹으면 가톨릭교도이고, 먹지 않으면 두 종교의 신도임이 분명했던 것이다. 아무리 개종했다고 주장해도 돼지고기를 내밀면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 「육식의 주인공이 된 돼지와 양」 중에서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최대의 특산품은 올리브였다. 아테네에는 이러한 전설이 내려온다. 새롭게 폴리스가 건설되어 수호신을 선택해야 하는데, 지혜와 전쟁의 신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기를 계속했다. 이에 시민들은 더 좋은 선물을 보낸 쪽을 이긴 것으로 하기로 했다.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보냈고, 포세이돈은 해마를 보냈다. 결국 아테나의 선물을 더 좋게 본 까닭에 도시의 이름을 아테나에서 따온 아테네로 정했다는 것이다. 한편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는 올리브 재배의 신이기도 하다.
--- 「숲과 지중해에서 자란 유럽 요리」 중에서
치즈의 탄생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아라비아의 설화에는 여행 중 마시려고 양의 위를 건조시켜 만든 물통 속에 염소젖을 넣고 다닌 상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일정을 마치고 통을 열어보니 하얀 덩어리와 투명한 물이 고여 있었고, 호기심에 그 맛을 봤더니 풍미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 그때부터 치즈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 「초원과 사막을 건너온 식자재」 중에서
향신료의 또 다른 대표 주자인 후추는 육식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중세 유럽에서 화폐의 대용으로 쓰일 정도로 귀중품이었다. 영주에게 내는 소작료나 결혼할 때 쓰는 지참금을 후추로 내미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중간 마진 없이 현지에서 싼 가격에 후추를 사오려는 욕구가 솟구쳤고, 이는 대항해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원동력이 된다.
--- 「먼 바다의 파도를 넘어서」 중에서
토마토도 신대륙에서 온 작물로 세계 각지의 요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유럽인의 토마토 사랑이 특별한데, 영국에서는 사랑의 사과(love apple), 이탈리아에서는 황금 사과(pomodoro)라는 별칭으로도 부른다. 이탈리아에서 황금이라고 부른 이유는 처음에 들어온 토마토가 노란빛을 띠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처음 본 토마토를 사과의 친척쯤으로 여겼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 「세계의 식탁을 장식한 신대륙」 중에서
레스토랑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약 30년 전쯤 생긴 것인데, 그때까지는 제대로 된 레스토랑 없이 외식이 가능한 여관이나 술집 등이 있을 뿐이었다. 1765년, 파리에 사는 블랑자라는 요리사가 소고기, 양고기, 거세된 닭, 비둘기 새끼, 메추라기, 양파, 무, 당근 등이 들어간 수프를 만들어, 원기를 회복시켜준다는 뜻의 레스토랑(restaurant)이란 이름을 붙여 팔았다. 그의 수프는 금세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여기서 레스토랑이라는 음식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의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1786년에는 요리와 음료를 제공하는 가게를 레스토랑이라고 부를 것을 정한 법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 「식품 가공업의 등장」 중에서
우유는 인도와 유럽 일대에서 음료와 버터, 치즈 등의 가공품으로 널리 이용되었지만, 생우유만큼은 쉽게 상하는 성질 때문에 생산지 인근에서만 마실 수 있었다. 생우유를 도시에서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 이후의 일이었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여기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목장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생우유를 마신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 「멈춰진 부패」 중에서
가족의 유대감을 유지시켜 주던 식사의 형태가 변하자 가족이라는 형식 그 자체도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인간관계와 신뢰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요리라는 공동 작업은 전자레인지로 인하여 쇠퇴하였고, 혼자 밥을 먹게 된 인간은 고립되었다. 인류가 키워온 식탁이라는 무대는 그 위상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 「식탁 위의 유통 혁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