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먹은 날 밤에 / 지도를 그렸어 // 이불에 그려놓은 / 몽글몽글 지도그림 // 엄마, 내가 싼 게 아니야. / 수박이 싼 거야. // 수박이 그림을 / 참 잘 그렸구나. / 올록볼록 오목조목 / 참 잘 그렸구나. // 어, 뭐야. / 수박 아니야. / 나야, 나라고.
--- p.11, 「오줌 싼 수박」 중에서
“우와! / 우리 석환이 65점이나 받았네, / 지난번에는 60점 받았더니.” // ‘뭐야, 우리 엄마 바보 아냐, / 65점이면 꼴찌 수준인데.’ // 그러면서도 석환이는 // ‘게임 시간을 좀 더 줄여야지.’ // 속으로 다짐한다.
--- p.22, 「엄마의 작전」 중에서
텃밭에서 / 무를 뽑는다. // 엄마가 키우신 / 무는 // 매끈매끈 / 보들보들 / 사근사근 / 달짝지근 // 날씬한 모양새는 / 또 얼마나 이쁜지 // 한 입 깨물기도 / 미안해진다. // 그런데 사람들은 / 못생긴 다리를 보고 / 왜 무다리라고 하지?
--- p.90, 「궁금한 일 2」 중에서
밤하늘별을 / 유심히 보던 수아 // 언니, 언니. / 별은 그냥 / 반짝거리기만 하는데 / 별을 그릴 때는 왜 / 오각형으로 그려? // 으응, 그건 말이야, / 도라지꽃의 영혼이 / 별이 되었기 때문이야
--- p.108, 「궁금한 일 15」 중에서
표제글 프랑스에 알퐁소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하빈의 동시 〈마지막 수업〉이 있다. 소설은 알다시피, 전쟁에서 져서 모국어인 프랑스어 수업을 못 하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동시는 일흔을 넘긴 까막눈 할머니가 한글학교 수업 마지막 날, 공책에 ‘일생을 압축하고 함축한’ 글(?)을 마냥 즐겁게 쓴다는 행복한 내용이다. 다른 사람에게 입으로 전달하는 말 편지가 아니라, 할머니가 직접 쓴 손편지! 할머니의 편지 제목을 손자는 속상해하지만, ‘할머니는 마냥 즐거우시다’고 하니,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철부지 어른으로서 동심에 빠져, 동심을 찾기 위해 BTS 덕후는 물론이고 아이돌 구성원들 이름을 랩처럼 줄줄이 말할 줄 아는 천진난만 생기발랄한 분이 하빈 시인이다. ‘물 향기’라는 필명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병마와 싸우며 성장기를 사막의 낙타처럼 어렵고 힘들게 보냈다. 그럼에도 긍정 의지로 이를 극복하고 불모의 사막 한가운데서도 십 리 밖의 물 향기를 맡을 줄 아는 낙타의 지혜를 발판 삼아 동시를 꾸준히 써 왔다. 이번 네 번째 동시집은 그야말로 아이와 어른의 심리적 밀당(〈오줌 싼 수박〉, 〈할아버지 갑 갑〉, 〈순진한 막내〉, 〈엄마의 작전〉 등)이 쏠쏠하게 재미와 웃음을 준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무언가를 찾아 ‘두리번거리기’보다는 이제 그냥 ‘어슬렁거리’며 다닌다. 여기저기 이곳저곳 다니며 접한 것들(〈참새와 개망초〉, 〈종달새와 제비꽃〉, 〈해바라기와 채송화〉 등)의 관계를 우리에게 조곤조곤 전해 준다. 궁금증을 머리와 꼬리에 달고 다니는 철부지 시인 하빈은 삶이 ‘많이 힘들 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비밀의 문〉 비밀번호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별 꿈 꽃 마음’ ‘향긋한 귤 향기는/별의 노래’라고 말하는 하빈 시인의 공감각 프리즘이 아름답다. - 김춘남(시인, 아동문학가)
--- 「표제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