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굶주린 자들과 나는 서로 닮았다. 우리는 모두 종이다. 그들은 13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이슬람교의 종이고, 나는 이슬람교의 결정체인 군주의 종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달랐다. 늑대 새끼 무리보다 커다란 늑대 한 마리가 더 무서운 법이다.
--- p.13
내가 당신들에게 묻겠다. 경제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담배를 피울 수 없었던 골초에게, 담배꽁초는 무엇을 의미할까? 만일 내가 나의 배고픔을 채워야 한다면, 나는 창고를 다 털 것이다. 그런데 만일, 바로 그 순간, 군주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면 어땠을까? ‘네 안에는 과인이 알 수가 없고, 또 과인을 겁주는 무엇이 있다. 너는 더 이상 과인의 세계 안에 있지 않다. 네가 원하는 바를 말로 표현해 보아라. 과인이 너에게 그것을 허락하겠다.’ 나는 대답했을 것이다. ‘자유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자유를 거절했을 것이다.
--- p.58~59
너의 고통스러운 과거, 너의 상상력, 네가 받은 교육 덕분에, 너는 동양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너는 알라를 전혀 믿지 않으며, 전설을 파헤쳐 분석할 수 있고, 프랑스어로 생각하고, 볼테르를 읽고, 칸트를 찬양한다. 그렇지만 너는, 네가 도달하려는 서양 세계도 어리석음과 추악함이 퍼져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네가 탈출하려는 그 추악함과 어리석음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 그뿐만 아니라, 너는 그 세계가 적대적이고, 너를 즉시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넓고 편안한 자리에서 좁고 불편한 의자로 바꿔 앉아야 하는 순간, 너는 뒤로 물러서고 있다. 자, 바로 이것이 내가 네 앞에 나타난 이유다.
--- p.134~135
“그래. 형은 우리와 같은 곳에서 위로 올라갔어. 그런데 형은 도대체 왜 여기 남아 있는 우리가 고통 받고 있고, 또 여기 있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형이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우리가 이미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된 거겠지. 나는 형처럼 내 생각을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이 몇 마디면 형에게 충분할 것 같은데. 그렇지만 나는 알고 싶어. 형이 정말 여기서 숨이 막힌다면, 왜 그냥 문밖으로 나가지 않는 거야?”
--- p.198
군주는 계단의 전등을 켰다. 계단이 어둠 속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저주받은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해 올라가는 것처럼. 마치 어퍼컷이 웃고 있는 턱을 향하는 것처럼. 남성의 음경이 유전자가 하나만 다른 성을 향하는 것처럼. 똑바로. 자포자기한 채,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나를 끌어올렸다. 밑에 있는 계단에서 그다음 계단으로가 아니라, t라는 시간에서 t’라는 시간으로가 아니라, 바로 군주를 향해서였다. 이것은 다시 시작하는 삶 같은 것 아닌가?
--- 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