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자가 물었다. “연설기획비서관과 연설비서관은 어떻게 역할을 나눕니까?” 내가 답했다. “신동호 연설비서관은 3·1절, 8·15 등의 확정된 주요 연설을 맡고, 나는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 국무회의 발언문을 써요. 메시지 기획도 해야 하고. 쉽게 말해서 일어서서 하는 연설은 신 비서관이, 앉아서 읽는 발언은 내가 쓰지요.”
--- p.16, 「들어가며」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조심스럽게 말할 때 특유의 표정을 짓는다. 눈이 부신 듯 약간 가늘게 뜨고 상대방을 빤히 바라본다. 상대방은 딴생각할 겨를 없이 문 대통령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최 비서관이 할 일은 내가 할 말과 쓸 글이 뭔지 고민하는 겁니다. 내 나이에 맞게요.”
대필하거나 구술한 걸 정리하는 것이라면 못 할 일도 아니다. 말과 글을 기획해 육화하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것도 60대의 언어로. 속으로 ‘아이고’ 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 p.21, 「들어가며」 중에서
대통령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실 텐데 어떻게 푸시나요?”
다른 비서관들도 궁금했나 보다. 다들 대통령 입을 쳐다봤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이 나왔다.
“참지요.”
재미없는 답변. 다들 소리 내지 않고 입매로만 웃었다.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또 물었다.
“참아도 스트레스가 안 풀리면 어떻게 하세요?”
문 대통령은 이번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래도 참지요.”
살짝 웃음소리가 났다.
식사가 끝나갔다. 다시 물었다.
“대통령님, 그래도 스트레스가 남으면요?”
문 대통령은 나를 잠시 쳐다봤다. 지청구라도 들으려나?
“뭐….”
답이 나오려나 보다. 술, 등산, 독서, 수다?
“참지요.”
--- p.41, 「1장 본심, 고구마 대통령」 중에서
법, 제도는 국회를 거쳐야 하지만 적극 행정은 공직자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규제 규정이 없는 한 가능하다고 생각해 주세요.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선의의 행정이었다면 문책을 안 받게 해주세요. 이는 오히려 경험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내가 청와대를 나온 뒤 2019년 3월 적극 행정 면책제도가 시행됐다.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행정을 하다가 실수해도 책임을 지우지 않는 제도다. (...) 관행에 따른 규제, 기득권 때문에 유지되는 규제는 폐지 혹은 개선돼야 한다. 이 마땅한 일이 안 된다. 그만큼 관행과 기득권이 강하다. 어떤 정부에서도 쉽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가장 강한 의지일지도 모르겠다.
--- p.88, 「1장 본심, 춘풍추상」 중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이 물었다. “대통령님 지시 사항에 이견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까?” 문 대통령이 답했다. “이 회의에서 받아쓰기는 필요 없습니다. 대통령 지시 사항에도 이견이 있어야 합니다. 수석·보좌관회의는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최초의 계기입니다. 여기서 격의 없는 토론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는 그렇게 못 합니다.”
전병헌 정무수석이 질문했다. “소수의견이 있었다고 바깥에 (소식이) 나가도 됩니까?” 문 대통령이 답했다. “반대의견이 있었다는 것도 함께 나가도 좋습니다. 격의 없는 토론이 필요한데 미리 정해진 결론은 없지요.”
문 대통령은 덧붙였다. “잘 모르면서 황당하게 여겨지는 얘기까지 하셔야 합니다. 뭔가 그 문제에 대해 잘 모르지만 느낌이 좀 이상하지 않으냐, 상식적으로 안 맞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자유롭게 해주셔야 합니다.”
--- p.125, 「1장 본심, 삼무三無회의」 중에서
문 대통령은 청원 게시판 운용에 뿌듯함을 표시했다. 2018년 5월 14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청원 업무를 맡은 분들에게 수고가 가중돼 대단히 미안한 느낌”이라면서도 “국민에게 꼭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 해결이 안 되더라도 하소연할 곳에다 청원하고 공감하면 그것으로 분이 반은 풀립니다. 유지 발전시켜야 합니다”라고도 했다.
들어주기만 해도 분이 풀리더라는 말은 여러 자리에서 했다. 그렇게 경청의 의미를 짚었다.
--- p.164, 「2장 합심, 국민 청원 게시판 개설부터 폐쇄까지」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손을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개혁도 ‘저 문재인의 신념이기 때문에’ 또는 ‘옳은 길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눈을 맞추면서 국민이 원하고, 국민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해나가겠습니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습니다.
--- p.199, 「2장 합십, 국민소통수석실 설치」 중에서
북측 속담에 “한 가마 밥 먹은 사람이 한 울음을 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찾아온 손님에게 따듯한 밥 한 끼 대접해야 마음이 놓이는 민족입니다. 오늘 귀한 손님들과 마음을 터놓는 대화를 나누고 풍성한 합의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갖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특별히 준비해 주신 평양냉면이 오늘 저녁의 의미를 더 크게 해주었습니다. (…) 이제 이 강토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전쟁으로 인한 불행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영변의 진달래는 해마다 봄이면 만발할 것이고 남쪽 바다의 동백꽃도 걱정 없이 피어날 것입니다.
--- p.314, 「3장 진심, 외교라는 기꺼운 노역」 중에서
문 대통령 질문이 계속됐다.
“현장에서 아무리 우방국 비행기라도 그렇게 근접해 저공비행을 했으면 ‘목적이 뭔가’ (하고) 경고 등 현장 대응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구조에 급급하고 (상대방의) 다른 적의가 없더라도 사후에 강한 항의해야 하지 않습니까? 주객이 전도된 상황인데 왜 그걸 겪고만 있나요?”
--- p.396, 「3장 진심, 욱일기 게양 논란부터 일본 초계기 사건까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