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법학』을 펴낸 지 1년하고 몇 달이 지났다. 『기초법학』의 학문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다. 법과대학과 로스쿨의 법학도는 물론이고 법률가를 꿈꾸는 비법학도들, 그리고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을 맡고 있는 실무법률가들까지도 이 책을 읽는다고 한다. 실무상 난제들은 대부분 기초법학의 지식과 사유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해결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기초법학은 전문법 시대의 근본법학이 되어야 할 듯하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2판을 내면서 처음 이 책을 펴낼 때 했던 나의 머리말을 다시 반복해야겠다. 법과대학체제와 달리 로스쿨 교과과정에는 기초법학의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법철학, 법사회학, 법문학, 법심리학, 법미학, 법경제학, 법인류학, 법여성학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과목들은 최근에 성장한 신생학문분과들이다. 이들의 아버지 격인 법철학은 이제 기초법학 과목군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법철학은 기초법학의 총론적인 지위를 갖고, 그 밖의 기초법학과목들은 각론적인 지위를 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 법철학은 그 명칭을 『기초법학총론(원론)』 또는 그냥 『기초법학』이라고 바꾸어도 좋을 듯하다. 설령 명칭은 유지한다 하더라도 그 내용만큼은 변화되어야 한다. 그 변화의 방향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 첫째, 기존의 법철학 교재들이 흔히 그러하듯 역사 이래의 법사상을 개관하는 내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법사상사라는 과목의 몫이다.
― 둘째, (책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법의 개념, 이념, 효력, 도덕과 법, 국가, 현대사회의 법철학 등을 그 형식대상으로 삼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너무 오래된 문제의식이며, 학제적 연구가 충분히 전개되기 어려우며, 오늘날의 근본문제들을 다 담아내기 어려운 형식이기 때문이다.
― 셋째, 법사회학에서 법여성학에 이르는 다양한 기초법학과목들과 접점을 갖고 일반과 특수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풍부하게 해주는 교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 넷째, 기초법학으로서 법철학은 외국의 유명 법철학자들(예를 들어, 하버마스, 롤즈, 드워킨, 라즈, 맥코믹 등)의 사상을 연구하는 분과가 아니라, 그 사상을 참고하여 우리의 ‘지금 여기’의 근본문제들을 성찰하는 분과가 되어야 한다.
가급적 이런 요청을 충족하는 로스쿨 시대의 법철학, 즉 기초법학(총론)이 되고픈 열망에서 나는 이 책을 썼다. 그러나 이번에 완전히 새로 쓴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1991년 박사학위를 받고 학문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다양한 기초법분야에서 내가 펴낸 책과 논문들을 종합한 것이다. 여기에는 『법이론』(1996), 『법학입문』(1998), 『법사회학』(공저, 2000), 『법철학』(2003),『생명공학과 법』(2003), 『인권법』(2005), 『법문학』(공저, 2005), 『공익소송론』(2006), 『시민운동론』(2007), 『문헌연구 포스트모더니즘과 법』(공저, 2006) 그리고 『헌법재판과 형법정책』(2005) 등이 포함된다. 물론 이 책을 출간하면서 새롭게 쓴 단락도 있고, 대개의 단락은 상당한 정도로 보완되고, 다시 구성되고, 다시 표현되었다. 각 단락마다 출처와 생성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펴내 온 책들과 그 분과적 성격을 다음 도표에 의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이번에 펴내는 『기초법학』 2판은 초판에서 하버마스의 대화이론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2] 법과 대화이론〉을 빼고, 그 사이 펴낸 『법미학』(2008)과 로스쿨 시대의 법학교육방법론 논문을 더하고, 단락들의 배열을 새롭게 하였다. 기초법학에는 앞으로도 더 추가될 분야들이 있다. 이 책과 함께 펴내는 『법정신분석학입문』이 다루는 〈법과 무의식〉에 관한 단락, 그리고 〈법과 인류〉에 관한 단락이 미래에 『기초법학』에 들어올 새로운 후보들이다. 그러기엔 나의 연구를 좀 더 진행시켜야 하고, 그래서 시간이 좀 필요하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