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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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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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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16g | 128*205*20mm
ISBN13 9791130813806
ISBN10 11308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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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맨드라미, 붉은 칸나」

장작 난로에 불 피우려면
기도하듯 무릎 꿇어야 한다
아니 누군가에게 용서받아야 한다면
장작 난로에 불 피워야 한다

신문지 북북 찢어 불쏘시개를 깔고
밤을 견딘 밤나무 잔가지를 모아 불을 붙인다

차가워 냉정했거나
얼었던 마음에 불씨 붙일 수 있다면

말라
죽어가던 나무가 타닥타닥
다시 살아난다

불이 되면서 생긴 갈등과
증오의 부스러기가 연기로 피어오른다
가만히 무릎을 꿇은 자세,
연기를 핑계 삼아 눈물 흘려도 좋다

갇혀 있던
불의 씨앗,
생일날처럼 마주 앉아
손바닥 활짝 펼쳐 빈 손을 보여준다

바람이 없어도 흔들린다
바람이 없어도 피어난다

붉은 맨드라미, 붉은 칸나

「너를 사랑하는 힘」

믿음이라는 것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한쪽이 짓무른 사과를 베어 문다
냉장고 속 차고 어두운 곳, 힘에 짓눌린 양파는 썩는다 살이 맞닿은 사과는 물러진다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적절한 거리는 몇 미터인가!

달은 지고 꿈은 선명하였다
침묵하거나 침묵하지 못한 변명을 삼키며 맨발로 이상한 밤을 걸어간다 손을 내민 채 잠이 들면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온 네가 마주 잡아줄 것인가

모든 것을 끌어안은 채 마지막 이별, 주황색 불빛이 그림자를 당기는 거리에 선다 아를(Arles)의 밤처럼 외롭고 스산한 별빛이 머리 위에 빛난다

썩고 싶지 않았던 고백과 뉘우침이, 느린 구름을 머리에 이고 천천히 걸어간다 또다시 발이 푹 빠지고 두근거리는 의심으로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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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에서 제13의 안효희는 제14의 안효희를 낳기 위해 “지금 밥을 먹고 있”(「무거운 숟가락」)다. 시인 안효희의 툭툭 튀는 언어 감각은 바둑돌을 놓듯 섬세하고 과감하다. 언어의 새 집을 짓고 그 집을 위한 시정신은 참신하고 기발하다. “말라 죽어가는 나무”(「붉은 맨드라미, 붉은 칸나」)는 불 속에서 살아난다. 소멸에서 환생하는 나무의 역설이 시인의 도저한 정신주의를 말하고 있다. 그 신념으로 풍경의 조각들을 끌어모으는 미학을 “웃는 얼굴은 슬퍼지는 얼굴을 데리고 산다”(「그림자에 등을 기댄다」)라고 진술한다. 또한 “세계의 불안을 위무하는 물방울을 매단 비구름이 발을 다친 새를 위로한다.” “목 잘린 꽃잎/차라리 바람이 되고 싶은 꽃잎/언제부턴가 분화구가 되어가는 꽃잎”(「꽃잎과 물고기」)의 그로데스크한 진술에서 참담한 세계의 아프고 비통함을 보여준다. 절망스럽고 애련으로 깊게 물든 장면을 은근하게 읊는 시편들은 그러므로 깊고 아름답다. “죽은 나무도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곡 혹은 울음」) 애상들은 놓칠 수 없는 절망 극복의 처절한 미학이다.
- 유병근 (시인)
안효희 시의 기조는 해수면 위를 치솟아오르는 돌고래의 율동이라기보다 밤의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그림자에 가깝다. 조곤조곤한 어조로 한 걸음 한걸음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스며든다. 고요하게 묻고 나직하게 대답한다. “침묵하거나 침묵하지 못한 변명을 삼키며 맨발로 이상한 밤을 걸어”가거나 “그림자를 끌고 가는 왼쪽 얼굴이 햇빛 드는 오른쪽 얼굴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한다. 마치 한류와 난류가 합쳐지듯이 이번 시집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의식과 비의식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무너뜨리며 양편을 뒤섞는다. 기나긴 복도의 시작과 끝에서 서로가 마주하고 있는 형국이다. 움직임은 유연하다. 비밀을 깨달아가는 자신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불이 되면서 생긴 갈등과 증오의 연기로 피어”올라 “무수히 꽂힌 깃발”처럼 흔들리며 사는 여정을 포기할 수가 없다. 너를 사랑하는 힘, 그 힘은 뜨거운 삶을 살고자 하는 염원에서 생겨난다. 삶은 절실하고 간절해야만 한다. 온몸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우고 또 태울 것이다.
- 정익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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