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민정은 옷, 옷을 입는 사람, 그리고 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연구 중이다. 건국대학교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패션마케팅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의류직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육학을 동시에 공부하고 있다. 패션 잡지 에디터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옷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옷에 관한 한 ‘멀티플레이어’임을 자부하며, 쓴 책으로 『옷 입은 사람 이야기』(바다출판사,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가 있다.
요사이 대나무가 옷의 훌륭한 재료라는 사실이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실 대나무는 오래전부터 패션 제품을 위한 재료로 쓰였답니다. 다음 쪽의 그림을 봅시다.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 1859~1891의 작품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입니다.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여자의 치마를 보면 엉덩이 부분이 뒤로 봉긋하게 튀어나와 있지요? 저렇게 엉덩이를 과장되게 강조한 방식을 ‘버슬Bustle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1800년대 후반 유럽에서 유행했습니다. 엉덩이를 툭 튀어나와 보이게 하기 위해서 여자들은 버슬이라는 허리 받침대를 치마 밑에 입고 다녔는데, 그 버슬의 재료가 바로 대나무였습니다. 또한 허리를 가늘어 보이게 하기 위해 입던 코르셋에도 대나무가 쓰였다고 하니 패션과 대나무는 오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 p.39
몸의 기준을 왜곡시키는 원인이 온전히 대중매체나 옷이라는 사물 그 자체에 있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우리 내면에 있는 남들보다 더 아름다워지겠다는 욕망, 외모로 만들어지는 보이지 않는 계급 경쟁을 무분별한 외모지상주의의 가장 뿌리 깊은 원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강박에 짓눌린 사람들은 지나친 체중 감량을 시도하다가 소중한 생명까지 잃기도 합니다. 2007년, 한 패션모델의 누드 사진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사진 속의 그녀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극도로 마른 몸매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사벨 카로라는 이 모델은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심각한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였습니다. 그녀는 패션계에 만연한 마른 몸매에 대한 강요로 인해 신경성 식욕부진증에 걸렸으며, 여성 모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패션계의 관습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같은 누드 사진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2010년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 p.67
히틀러는 사람들의 애국심과 우월감을 고양시키기 위해 제복을 활용할 줄 알았습니다. 당시 나치스는 단순한 정치 정당이 아니라 히틀러가 지휘하는 군대와 경찰 조직을 통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제복을 입고 활동했습니다. 나치스의 제복은 각을 살린 날카로운 재단, 팔에 두르는 완장, 벨트·휘장·배지 등을 이용한 멋들어진 장식, 정강이를 덮는 긴 부츠 등이 조화되어 그 디자인이 무척 견고하고 독특했지요. 멋진 제복은 당시 독일 젊은이들의 환심과 동경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 p.143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봉제 공장은 아픈 기억의 상징일지도 모릅니다. 옷을 만들어 수출하기 위해, 그래서 외화를 벌어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리고 젊은 노동자들을 수없이 희생시킨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봉제 노동자들의 많은 수는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밤을 새워 일하고 받은 적은 돈마저도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생활비로 부치거나 집안의 다른 형제, 즉 오빠나 남동생 등 ‘아들’의 교육비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1970년대에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집안의 남자 형제들이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