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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551쪽 | 626g | 128*188*35mm
ISBN13 9788925871516
ISBN10 892587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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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철제 의자를 붙잡고 뤼팡의 머리를 옆으로 후려쳤다. 둔탁한 소리가 나며 뤼팡이 바닥에 쓰러졌다. 바로 붙었다. 뤼팡 몸뚱이 위에 올라타서 나이프 손잡이를 거머쥐었다. 단숨에 쑤셔 넣었다. 왼손으로 뤼팡의 입을 막고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쑤신 채로 체중을 다 실어서 뤼팡을 눌렀다. 낚싯바늘에 걸린 생선처럼 뤼팡이 격렬히 바동거렸지만 이윽고 움직임이 멈췄다.
나는 굴러 떨어지듯 뤼팡의 몸에서 내려왔다. 심장이 급박하게 고동쳤고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찔린 상처에서 화상과 같은 화끈한 통증이 퍼져 나갔고, 등은 오한으로 얼어붙을 것 같았다.
나는 옷을 걷어 올려서 상처를 살펴봤다. 어둠 속이라 확실히 알기 어려웠지만, 뤼팡의 나이프는 피부와 지방만을 찢고 만 듯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나는 뤼팡의 나이프를 찾았다. 테이블 밑에 굴러 떨어져 있었다. 나이프를 주워들고, 마냥 태평스레 잠들어 있는 톨루엔에 취한 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상체를 일으키고는 뒤로 돌아 섰다. 눈을 질끈 감고 놈의 목에 나이프를 쑤셨다. 휙 하는 소리가 나며 피가 분출했다. 머리카락을 놓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며 핏줄기가 힘을 잃고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다. 놈의 손발이 경련하는 걸 보고 불쑥 웃음이 치밀었다.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으며 뤼팡의 나이프 손잡이를 상의 소매로 닦았다. 바닥에 쓰러진 뤼팡에게 다가가서 신중히 나이프를 손에 쥐게 만들었다. 그런 뒤 이번에는 뤼팡의 배에 박힌 나이프를 빼냈다. 피가 튀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아까처럼 손잡이를 닦고 톨루엔 중독자 오른손에 쥐어 놓았다. 놈이 오른손잡이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해 뒀다.
거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본문 중에서

“나도 옛날엔 너처럼 이것저것 매사를 복잡하게 생각하곤 했어.”
나츠미가 고개를 기울인다.
“내가 튀기라는 것도 그렇고, 가부키초에서 대만인과 대륙 놈들과 살아가는 것도 그랬어. 매일처럼 망설이고 고민하고 누군가를 증오하다 비참한 기분에 처박히곤 했어. 근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한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걸.”
“어떤 법칙인데?”
“이 세상은 뺏는 놈과 뺏기는 놈 둘밖에 없다는 거야.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이러쿵저러쿵 고민하는 인간은 평생 누군가의 호구가 될 뿐이야. 그래서 나는 고민하기를 관뒀어. 뺏는 데 전념하기로 했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얘기 알지? 근데 그렇게 말하면 걷는 놈 밑에는 기는 놈이 있다는 거야. 나는 비참한 심정으로 10대 시절을 살았어. 그래도 나츠미랑 비교하면 훨씬 나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츠미가 나보다 비참했을지도 모르지만 아프리카에 굶어죽는 애들보다 더 비참해? 아우슈비츠에서 몰살당한 유태인보다 더? 다른 아이에게 심장과 신장을 제공하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배를 갈라 살해되는 애기는? 이런 건 끝없이 일어나고, 고민해 봐야 아무 의미 없어. 우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뺏는 데 전념하는 게 나아. 멍청한 호구는 썩을 만치 많아.”
“그치만…… 그러면, 쓸쓸하지 않아?”
“쓸쓸?”---본문 중에서

나는 테이블 위로 몸을 내밀어 나츠미에게 다가섰다.
“무슨 헛소리야? 매일 넋두리를 들어 줄 엄마 젖이 필요해? 신문에 따르면 우린 문명세계에 살고 있다고 하지. 그건 사기야. 우린 정글에 살고 있어. 최소한 가부키초는 그래. 하이에나가 남의 먹이 훔쳐 먹기를 관두고 쓸쓸하다며 울기라도 한대? 그놈들은 살아가기 위해 남의 먹이를 가로채느라 정신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쓸쓸? 그딴 걸 생각할 시간도 없어.”
“나이 먹으면 어떻게 할 건데? 몸을 쓸 수 없게 됐을 때도 남 등칠 궁리만 하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손대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과 권력을 쥐고 있어야지. 그럴 수 없으면…… 뒈질 수밖에 없어.”
나츠미가 가면을 쓴 것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씩 웃어 보이고 전표를 들고 일어났다. 잘난 척 입을 놀렸지만 내 꽁무니에 불이 붙은 신세다. 나츠미가 손을 내밀어 내 손목을 잡았다.
“있잖아, 난 어떻게 되는 건데? 나도 자기 먹잇감이야?”
나츠미의 얼굴이 창백했다. 눈만 기이한 열기를 품어 촉촉했다. 나는 그 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하기 달렸어. 내가 나츠미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지. 안 그래?”
나츠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나츠미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내 팔꿈치에 팔을 감고 일어났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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