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금단의 마술
“사실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창고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어.”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사람은 자신이 만든 호랑이뿐만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놓은 호랑이한테서도 자신을 지켜낼 방법을 알아야 해.” (212쪽)
이렇게 해서 자신은 포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희생이라는 행위에서 오는 자만심을 철저히 떨쳐버림으로써 이 의식은 끝이 난다... 초드에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나는 이 엄숙한 의식에 매료되었고 또 이 같은 의식이 치러지는 티베트 특유의 자연 환경에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217쪽)
그들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그 장엄한 황야에서 북과 피리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기대와 공포, 끝없는 욕망, 환상을 좇는 괴로움뿐인 인생을 쳐부수었다는 승리의 환희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등줄기를 쭉 펴고 돌부처처럼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동이 트고도 계속되는 긴 명상에 들어갔다. 결코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232쪽)
제5장 황금 전설
우리가 그들과 신앙을 같이할 수는 없지만, 막 출가한 날졸파가 받는 가혹한 훈련 이야기를 모두 허구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런 일은 모두 옛날 일로서 현대에는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실제로 티베트인의 마음은 마르파 시대 이후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빙설의 나라 각지에서는 옛날에 있었던 환성적인 모험이 지금도 여전히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249쪽)
카르마 도르제는 마음 깊이 존경하는 밀라레파처럼 방랑하는 수행자로서 삶을 살았다. 내가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어딘가에 정착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카르마 도르제만큼 젊은 시절부터 기이한 체험을 많이 한 은자는 매우 드물다. 그렇지만 제자의 영적인 훈련에는 으레 이상한 사전이 따르기 마련이다. 내가 들은 수많은 신기한 이야기, 그러고 ?빙설의 땅?에서 제자로서 직접 체험한 일을 통해 그 대부분이 진실임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270쪽)
제6장 기적의 비법
본교의 한 주술사가 무아경에서 열을 일으키는 것은 호흡 때문이 아니라 태양을 명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미심쩍어하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암시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자기 암시로 스스로를 죽일 수도 있소. 이런 방법으로 죽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열을 일으키기는 휠씬 간단하지 않겠습니까?” (305쪽)
여기서 나는 대부분의 티베트 사람들은 서양인만큼 심령 현상을 조사하는 데 열성적이지 않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들에게 심령 현상이 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놀랄 만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연 법칙에 대해서 또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 고정 관념이 없다.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방법만 알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현상 그 자체는 그것을 일으키는 능력자에 대한 숭배 이상으로 티베트 사람들의 마름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322쪽)
제7장 밀교 명상법
티베트인은 호흡법을 통달함으로써 앞장에서 설명한 육체적인 효과 외에도, 세속적인 격정과 분노, 육욕을 극복하고 고요함을 얻어 마음을 명상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시키고 영적인 에너지를 각성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티베트의 신비가들은 “호흡은 준마이고 마음은 기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준마인 호흡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 (353쪽)
물론 은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 이들 명상 수련의 목적은 아니다. 진정한 목적은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와 모든 현상이 우리의 상상에서 나온 환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있다. ‘그것은 마음에서 나오고 마음으로 가라앉는다.’ 사실 이것이 티베트 밀교도들의 기본 가르침이다. (356쪽)
정신을 집중한 결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신의 인간적인 성품을 잊어버리고 야크가 된 것처럼 느꼈다. 동굴 입구는 인간이 나오기에 충분한 넓이였지만 야크에게는 좁았다. 그래서 제자는 상상 속의 장벽과 싸우면서 스승에게 외쳤다. “뿔이 걸려서 나갈 수가 없어요.” (362쪽)
정원에 대한 주관 영상을 만들었다면, 다시 말해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정원을 바라볼 때만큼 또렷이 본다면, 수행자는 정원을 구성하고 있는 세부적인 것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이런 방법으로 수행자는 마음속에서 모든 형태의 관념을 배제하고 서서히 ‘순순한 무한 공간’, ‘무한 의식’ 같은 의식 상태에 이른다. 마침내 ‘공의 경지’에 다다르면 ‘의식도 없고 무의식도 없는’ 경지에 다다른다. (364쪽)
제8장 영험의 법칙
왜 티베트가 신비한 지식과 초자연적인 현상이 존재하는 나라로 선택된 것일까... 아마도 가장 확실한 원인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시무시한 산맥과 거대한 황무지로 에워싸인 이 나라의 극단적인 고립성일 것이다... 티베트에는 동화 나라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티베트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신과 악령의 세계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풍경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82~383쪽)
기적 같은 사건에 관하여 정작 티베트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귀 기울이는 것이다. 티베트인 누구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서양인이 생각하듯 (초자연적인 현상) 기적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사실 티베트 사람들은 무엇 하나 초자연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른바 기적이란 일상의 사건과 똑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거의 알려지지 않은 법칙과 힘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여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서 ‘기적’이라고 여기는 것을 티베트 사람들은 ‘심령 현상’이라고 부른다. (385쪽)
티베트인의 이론은 어느 현상에서나 핵심이 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의 힘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가 단지 주관적인 영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논리적이다. (396쪽)
나는 티베트의 심령 현상에 과한 이 책의 내용이 유능한 과학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진지하게 연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심령 연구도 여느 과학적인 연구와 똑같은 정신으로 추구해야할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일군 발견이야말로 초자연적인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미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반대로 그런 연구는 소위 기적의 메커니즘을 분명히 밝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일단 분명하게 설명이 되면 기적은 더는 기적이 아니다. (416쪽)
.
제1장 빙설의 성지
유명한 티베트 속담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은 지옥에서도 편히 지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라마가 말하는 ?타브(방법)?의 의미를 어떤 정의나 표현보다도 명확히 설명해 준다. 대다수 불교 신자들은 죽은 사람의 운명이 도덕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 가운데, 라마교도는 ?바른 방법?을 깨친 사람은 사후의 운명까지도 좋게 바꿀 수 있다고 설교한다. 다시 말해서 가능한 한 바람직한 상태로 환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55쪽)
산림 지대에서는 주로 시체를 화장한다. 그러나 중북부의 광대한 황무지에서는 연료가 소똥밖에 없기 때문에 마을 근처나 산악 지대 어디나 널려 있는 묘지에 시체를 방치하여 새의 먹이가 되게 한다...보시를 존중하는 불교도의 교리에 따라 라마교도는 장례식에 최고의 보시를 한다. 즉, 죽은 사람의 몸을 굶주림에 고통받는 새들에게 내주는 것이다. (61~63쪽)
“얘야, 나는 여자에게 흥미가 없단다. 헌데 근처 사원의 대라마가 가르침을 모두 무시한 채 무지하게 죽어버렸구나. 나는 그의 영혼이 바르도에서 방황하다가 불행한 쪽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지. 그것이 하도 불쌍해서 그에게 인간의 자궁을 내주려던 거였다. 허나 라마의 업보가 너무 강해서 그걸 이루지 못했구나. 네가 달아난 사이 마을의 나귀 두 마리가 교미를 했단다. 대라마는 곧 당나귀로 태어날 게야.” (69쪽)
제2장 동굴의 은자
티베트에는 다른 곳과 대조적인 부분이 아주 많은데,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여성들의 용기였다. 네댓 명이 무리를 짓거나 때로는 혼자서 광야에서 살려는 여성을 서양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 개월 아니 몇 년 동안이나 들짐승과 산적이 들끊는 외딴 산악 지역을 돌아다닐 수 있는 여성 또한 없다. 그런데 그것이 티베트인 여성의 성격이다. 그녀들은 현실적인 위험을 무시하기는커녕 기괴한 모습의 수많은 악령과, 절벽 끝에서 자라나 가시 돋친 가지로 여행자를 붙잡아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악마의 풀까지 상상하면서 위험을 키운다. (113~114쪽)
‘창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가 싶더니만 문이 덜컹덜컹 소리를 냈다. 침상 맞은편 틈새로 별 하난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마치 내게 “지내기는 어떠세요? 은자의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고 묻는 듯하다. “기분 좋아. 최고야. 이 세상의 온갖 쾌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은자의 생활이야말로 그 어떤 삶보다도 멋져!”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깜박이던 별이 갑자기 초롱초롱 빛을 발했다. 그리고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동굴 전체를 비추었다.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여왔다. ‘이 암자에서 죽을 수 있기를. 나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123~124쪽)
긴 은둔 생활의 성과는 무엇일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것을 배운 것만은 확실하다. 문법책과 사전, 그리고 곰첸과 나눈 대화를 통해서 티베트어를 익히는 틈틈이 하는 곰첸과 함께 유명한 티베트 신비가들의 생애를 읽어나갔다. 곤쳄은 이따금 말을 끊고 직접 목격한 사건을 들려주었는데 내용은 대체로 책에 나온 일화와 비슷했다. 곰첸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중간중간에 그들과 나눈 대화와 그들의 사람에 관하여 덧붙이곤 했다. 그리하여 나는 오두막에 앉아서도 부유한 라마승들의 대저택을 방문하기도 하고 때론 여러 수행자들의 암자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많은 길을 지나치며 특이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티베트인과 그들의 관습과 사상을 접할 수 있었다. 이는 훗날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129쪽)
제3장 신비의 라마교
비록 지금은 수도승들의 마음이 상업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가득하지만, 티베트의 사원은 원래 세속적인 사람들을 위해서 세운 것은 아니다. 오관으로는 지각할 수 없는 세계를 정복하고 초월적인 지식과 신비한 깨달음, 그리고 신통력을 익히는 것, 그것이 이 빙설에 갇힌 라마교의 요새와 수수께끼 같은 마을이 건립된 목적이다. 하지만 요즘은 신비가와 주술사를 사원 밖에서 찾아야 한다. 물질에 대한 욕망과 추구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버린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더욱 외지고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장소로 옮겨 산다. (155~156쪽)
고인이 된 라마나 점술가의 지침과 특징이 일치하는 어린아이가 쉽게 발견되기도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발견하지 못하여 결국 못 찾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은 툴쿠를 숭배하는 신자들에겐 크나큰 슬픔이다. 일반 승려들은 더 큰 시름에 빠진다. 지도자가 없으면 신심이 높은 사원의 비호자나 고액 기부자가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181쪽)
대사원과 토지 수유자인 대툴쿠의 후임자를 뽑을 때는 의견 차이가 더욱 심해진다. 많은 가족이 물질적인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후보자로 내세우려고 애쓰기 때문이다...사실 지위가 가장 낮은 툴쿠의 친척만 되어도 그 혜택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까닭에 툴쿠의 후계자 선출에는 온갖 술책이 동원되며, 캄이나 국경 지방의 호전적인 지역에서는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18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