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길이 있다.‘지상의 낙원은 여자의 가슴과 말의 등 그리고 책 속에 있다’는 아라비아의 속담이 있지만 책 속엔 낙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진로를 위한 확고한 길이 있고 네거리 로터리가 있고 탁 트인 고속도로까지 무한정 뻗어 있는 것이다.
책을 귀하고 중요하게 여긴 것은 옛날 왕조 시대에 쓰던 ‘책冊’자만 보더라도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그들은 왜 황태자나 황후를 제왕의 조칙詔勅에 의해 봉하여 세우는 것을, 다시 말해 그런 일을 왕명으로 정하여 세우는 것을 ‘책을 세운다’는 뜻의 ‘책립冊立’이라고 했는가. 그리고 왕세자나 세손, 후, 비, 빈을 정해 봉작하는 일 역시 무엇 때문에 책을 봉한다, 책으로 봉한다는 뜻의 ‘책봉冊封’이라 했는가. 천자의 조칙, 명령서를 받든 채 번국藩國, 제후국에 파견돼 천자 대신 봉작을 내려주던 옛 중국의 사절 또한 왜 책을 봉하는 사절, 책으로 봉하는 사절이라는 뜻의 ‘책봉사冊封使’라 했는가. 별나고도 신기한 일이 아닌가.
장서광藏書狂, 비블리오 마니아(bibliomania)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하게 보관하는 책은 따로 있다. 비급이며 보서寶書다. 비급, 보서는 아니더라도 노상 곁에 두고 애지중지 읽고 또 읽는 책 또한 있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삼국지』, 『수호지』,『서유기』,『금병매』 등 중국 사람들이 사대기서四大奇書로 꼽고 있는 책들이 그렇고 원대元代에 가장 뛰어난 네 가지 책, 사대기서四大奇書로 꼽히고 있는 『삼국지』,『수호지』,『서상기』,『비파기』 등이 그러하다. 한데 그 많은 책, 그 숱한 책 가운데 과연 어떤 책을 어떻게 골라 읽어야 할 것인가야말로 중요하다. 인생에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꼭 읽어야 할 양서, 보서寶書, 성서만 해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독서 강국이자 ‘경제 동물’인 일본 사람들이 일확천금이라는 말 대신 ‘일독천금一讀千金’이라는 말을 즐겨 쓴 지는 오래다. 한 권의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천금의 가치가 있거나 천금의 가치보다도 낫다는 뜻일 게다.
좋은 책이라면야 공자처럼 읽고 세종대왕처럼 읽은들 어떠랴. ‘삼절三絶’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주역』을 너무 여러 번 읽는 바람에 그 책을 꿰맨 가죽 끈이 세 차례나 끊어져나갔다는 고사에서 생긴 말이 三絶이 아닌가. 책이 너덜너덜 해지도록 주무르며 또 읽고 또 읽었다는 얘기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치文治의 왕, 문덕文德의 대왕인 세종 또한 심한 안질에 걸려 고생할 정도로 노상 책을 손에서 떼지 않은 과독過讀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단지 훌륭한 책, 좋은 책일 때에 한한다. 설마 공자님이나 세종대왕께서 별로 좋지 못한 책이나 속된 말로 씌어진 비속한 책, 토원책兎園冊, 나쁜 책을 그렇게 읽었을 리도 없고 읽어서도 안될 것이다. 속된 말로 씌어진 비속한 책을 토원책이라 하는 것은 중국 양나라 효왕孝王의 장서가 모두 속어로 씌어진 책이라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자신의 저서를 졸저拙著라 하며 겸손하게 표현할 때 ‘兎園冊’ 또는 ‘兎園著’라는 토를 달아 말한다.
“현존하는 책의 90%는 시원찮은 것이다. 따라서 좋은 책이란 바로 그 시원찮은 책을 꾸짖고 논파論破하는 것이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소설가인 디즈레일리의 말이다. 90%까지야 모르지만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형편없는 토원책, 저질 서적, 불량 서적, 불온不穩 서적이 흔하다. 전거典據와 논거論據가 불확실하고 틀린 데가 많아 이른바 ‘두찬杜撰’이라 칭하는 저질 학술 서적에서부터 내용도 알맹이도 없고 온통 속어 은어 등 비속한 말과 엉터리 말로 씌어진 기타 단행본을 비롯한 황당무계한 저질 소설 따위와 불온 서적 등이 너무나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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