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민 (shine@yes24.com)
1926년, 16세 되던 해에 방정환이 만든《어린이》지 4월호에 『고향의 봄』을 발표하면서 동시와 동화를 남기고, 한국 아동 문학의 기틀을 마련하고, 아동 문학 평론에도 업적을 남긴 이원수. 그는 1911년 태어나 일제시대, 6 · 25 전쟁, 4 ·19혁명 등 우리 나라 근대사의 굵직한 마디를 거친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가난해서 계속 이사를 다녀야 했으며, 사춘기 때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으며, 전쟁의 불길 속에 두 딸을 잃었다. 이렇게 어려웠던 개인사는 그의 문학 작품 속에서, 우리 겨레의 아이들이 아픈 우리 민족사의 본질을 바로 보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해방 전까지 주로 동시를 발표해 오다가 해방 후부터는 역사와 사회의 현장을 고스란히 동화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해방 후 첫 장편 동화『숲 속 나라』는 그의 사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의 나라를 자유와 사랑과 자주의 나라, 외세를 배격하고 참된 독립의 나라로 판타지 형식으로 만든 동화다. 이는 이원수가 바라는 사랑과 자유로 이루어진 나라였던 것이다.
그는 동요와 동시 293편, 시 56편, 수필 172편, 동화 163편, 소년소설 56편, 아동극 23편, 아동문학론 97편 총 860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수 많은 작품 중에서『꼬마 옥이 (창작과비평사)』에 실린 동화 몇 편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이 책에는 제 1부에 열한 편, 제 2부에 네 편을 담고 있다. 장르는 우화, 동물들의 이야기, 환상적인 이야기 등 다양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모두 그의 다른 여러 작품에서와 같이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상황, 불합리한 현실의 모순을 보여주어, 어린이들로 하여금 정의를 잃지 않고, 좋은 나라를 꿈꾸게 하고 있다.
『희수와 라일락』
가족 모두 사랑했던 희수라는 개가 죽어 집 앞 라일락나무 밑에 묻어 놓았더니, 봄마다 향기를 뿜으며 잘 자란 라일락이 희수같이 사랑을 받게 된다. '사랑하는 것은 죽어도 죽지 않는 것 같고, 오래오래 가슴 속에 살아 남는 것', '사랑'의 본질이 잘 드러나는 대목으로, 자연과 생명체, 죽음과 생명은 모두 한 줄기임을 보여준다.
『불새의 춤』
두루미를 철망 속에 가두어 가혹한 훈련을 통해 인간의 춤을 추게 하여 돈을 버는 두루미 무용원의 원장, 굶주림과 학대에 맞서 분신을 선택한 두루미, 철망 속에 갇힌 두루미가 인간의 욕심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기뻐하는 관객이 등장하는 동화다. 자신의 존재와 처해있는 현실을 알리기 위해 몸을 불사르는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던 두루미, 자연 속에서 아름다워야 할 두루미가 인간처럼 행동해야 했던 안타까운 현실을 그린 이 동화는 바로 청년 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다. 부당한 노동착취가 만연했던 우리 근대사의 문제를 어린이 동화로 담아내는 획기적인 시도를 보여주며, 또한 그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희야의 소라고동』
관심을 가질 때는 아끼지만, 일단 관심이 없어지면 버려두고 돌보지 않는 인간의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꼬집는 동화로, 이 세상 모든 것이 존재의 의미가 있고, 사랑 받을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다른 작품『바둑이의 사랑』은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고양이를 미워하던 바둑이의 이야기다. 미워하던 고양이가 쥐약을 잘못 먹었는지 갑자기 죽자, 어미 없는 새끼들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 때 바둑이는 새끼 고양이를 제 새끼처럼 품어주고, 기꺼이 어미가 된다. 이 사랑은 작가의 영원한 소재가 되어 동화의 곳곳에 배어있다.
『불꽃의 깃발』
산꼭대기에 뿌리를 내린 외로운 전나무 속에 사는 어린 소녀의 혼을 위해 아래 쪽 여러 전나무와 함께 있던 어느 노인의 혼이 자리를 바꾸어 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벼락이 내리쳐 산꼭대기의 전나무는 마치 불꽃의 깃발처럼 타오르고, 노인의 혼은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게 된다. 지금 나의 행복이 어느 누군가의 고마운 희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화려한 초대』
서울과 시골 어린이들의 동포애를 돈독히 하자는 취지에서 자매 결연 학교 운동이 생겼을 당시를 다룬 동화다. 이 자매 결연을 통해 농촌 학생 점순이와 한 선생은 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경험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오른다. 잘 먹고, 좋은 구경을 하고, 새 옷을 얻어 입었지만 무슨 죄를 저지른 것처럼 부끄럽기만 한 점순이와 새 옷을 입은 점순이를 보며 배고파 허리끈을 졸라매는 제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한 선생. 도시와 농촌의 빈부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끼고 돌아와야 했던 두 사람을 통해 잘못된 우리 교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원수는 수 많은 작품을 통해 가족에서부터 사회와 민족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과 부조리한 현실, 비극적인 역사까지도 따뜻한 가슴과 사랑으로 녹이고 다져 어린이 문학으로 탄생시켰다. 쓰여진 시대에 머물지 않고, 작품이 읽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독자와 공감하고, 감동을 전하는 작품을 우리는 좋은 문학이라고 한다. 분열과 증오, 전운이 감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과 형제들과 다 같이 사는 행복,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많은 사람과 같이 잘 살도록 노력하자.'는 그의 외침이 그 어느 때 보다 가슴깊이 전해진다. 그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