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동물을 일시에 깡그리 잡아 없애자 환경에 큰 영향이 미쳤다. 얼룩말 무리가 더 이상 풀을 뜯지 못하게 된 곳은 풀과 관목이 빽빽하게 자라 부싯깃이 되었기에 낙뢰로 인한 들불이 큰 위협이 되었다. 코끼리가 위쪽의 연한 가지와 새 잎을 먹기 위해 더 이상 나무를 쓰러뜨리지 않게 된 곳의 숲들도 더 빽빽해졌다. 대형 동물의 배설물과 사체가 극심하게 줄어들면서 청소부 역할을 하던 곤충 개체군과 다른 동물들 또한 급격히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외 곤충과 무수히 많은 무척추동물종을 비롯한 초목과 작은 동물들은 거의 온전히 살아남았다. 내가 처음 받았던 인상을 뒷받침할 만한데이터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먹이 사슬의 하층부는 큰 동물종의 회복을 기다리며 탄탄히 유지되고 있었다. (…) 고롱고사의 재탄생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레그 카 팀과 모잠비크 사람들이 이룬 엄청난 성취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아름다운 자연 지역을 둘러 경계를 그어 국립공원이 되었음을 선포하고, 대중을 위한 필수적인 편의시설들을 추가한 것이다. 손상을 입은 공원이 원래의 건강성과 활기를 되찾도록 회복시키는 일은 제로에서 시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별개의, 다른 차원의 일이다. --- pp.19-20
똥의 거주자들은 작지만 대단히 복잡한 드라마를 펼치며 경쟁하고, 싸우고, 자라고, 번식하고, 또 다른 똥을 찾을 자손을 내보내고, 마침내 죽는다. 동시에 박테리아와 균류로 구성된 또 다른 미소계(微小界)가 자체적인 순환을 통해 소용돌이치며 그들 사이에 사는 더 큰 생물들에게 의도치 않게 이익을 주게 될 재료들을 가공하고 에너지를 전달한다. 전체를 간략히 살펴보면 썩 호감이 가지 않는 이 똥은 하나의 생태계, 즉 우리가 주목하기 쉬운 영양과 사자가 속한 더 커다란 세계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생태계다. 이 생태계는 생물학적이고 화학적인 일련의 단계를 거치며 신선한 분변으로 시작하여 식물의 생장을 촉진시키는 흙으로 되돌아가는 잔여물로 끝난다. (물론 시간과 공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더 적지만) 똥 생태계의 역사는 연못이 습지가 되거나 혹은 초원이었던 풀밭이 결국 숲으로 바뀌는 변화와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 pp.53-55
공원의 복원이 진행되면서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던 코끼리들 중 몇 마리는 우두머리 암컷이 되거나 홀로 돌아다니는 수컷이 될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었다. 이 코끼리들은 젊은 시절에 참전 군인들이 경험한 것과 거의 비슷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맞먹을 고통을 겪었다. 조이스 풀의 기록처럼 이 코끼리들은 ‘끔찍한 것을 목격했다’. 고롱고사의 나이 든 우두머리 암컷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겁이 많으면서도 위협을 느꼈을 때 가장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무리를 이끌고 있다. 조이스 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이 든 개체들은 물론, 씨족의 어린 구성원들에게 ‘모든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믿을 만하다’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애썼다. 그 방법은 기본적으로 동물 행동 전문가들이 (평화로운 접촉을 반복해 얻어지는 진정 효과인) ‘익숙화’라 부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뱀을 부리는 사람과 몇몇 종교의 광신도들도 이 익숙화 과정을 통해 뱀을 (대부분) 안전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 --- p.69
둥지는 냉난방 시설이 완비된 최첨단 건물이기도 하다. 신선한 공기가 주거구역과 둥지 중심부의 균류 정원을 통과하며 지속적으로 흐르도록 설계되었다. 균류 무더기와 거대한 군집의 대사작용으로 중심부의 공기가 데워지면 대류에 의해 흙더미 위쪽에 있는 커다란 방으로 공기가 상승하고, 둥지의 바깥벽 가까이에 있는 모세혈관처럼 연결된 편평한 방들로 나누어 들어간다. 그러면 외부로 열이 전달되어 온도가 낮아진다. 또한 과도한 이산화탄소는 외부로 내보내고 산소는 내부로 들여와 공기를 맑게 한다. 온도가 낮아지면 공기는ㅡ서서히 아래로 내려가 둥지 아래쪽 중심부에 있는 낮고 긴 통로로 흘러 들어간다. 주거 공간과 균류 정원의 온도 상승을 통해 내부는 섭씨 30도에 가까워지고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대략 1.3퍼센트로 유지된다. 흙더미 둥지를 짓는 흰개미는 어떤 건축가에 의해 지시를 받는 것도, 그들의 작은 뇌 안에 있는 청사진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흰개미는 아프리카의 풍경을 압도하는 그렇게 많은 정교한 구조물들을 지을 수 있을까? --- p.91
물론 사람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다른 생명과 그 생명에 의존하고 있는 인간 삶의 질이 동일시되는 것은 안 되는 일일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후손으로 하여금 우리가 미쳤거나 어쩌면 죄라고 여길 만큼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생물 다양성의 죽음의 신, 즉 인간 활동이 낳은 모든 것은 다섯 범주로 묶을 수 있다, 편하게 머리글자를 따서 HIPPO라고 한다. 순서대로 가장 중요한 것부터 덜 중요한 순서다. H는 기후 변화로 야기되는 것을 포함한 서식지 파괴, I는 개구리를 죽이는 양서류호상균과 같은 침입종, 첫 번째 P는 일례로 중국 황하에서 어류의 1/3을 멸종시킨 주요 인자인 오염, 두 번째 P는 증가하고 있는 인구와 동반되는 소비 가속화의 지속, 마지막으로 O는 가차 없는 사냥이나 어획으로 종의 마지막 개체들이 사라지게 되는 과수확을 의미한다. --- pp.142-143
많은 작가들이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이 시대를 인류세라 부른다. 우리가 이제서야 어쩌다 인류세로 진화하게 된 것을 기꺼워하는 사람들에게 소박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멈추지 마라, 다만 부탁하건대 침범되지 않은 자연보호구역은 가능한 그냥 두자. 반 정도라도 좋다. 이 땅과 바다를 보전하는 것은 고귀하면서도 실행 가능한 목표이며, 특히 그 지역의 종들이 높은 밀도로 존재할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자연을 완전히 소모시켜버리는 대신 반이라도 보전한다면 이번 세기말에 남아 있을 100억 명의 사람들이 훨씬 나은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우리가 가진 모든 환상과 가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이 독특한 생물학적 세계에 매여 있는 생물학적 종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남을 것이다. (…)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은 우리의 유전자 속에 지워지지 않고 아로새겨져 있다. 점점 더 많은 생명들이 멸종의 길을 걷는 것을 내버려둔다면 인류세는 고독세, 즉 외로움의 시대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 p.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