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아니면 나흘 만에, 어떤 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며칠을 계속해서, 언제나 집채를 사를 듯한 붉은 햇살이 주막 창문에 번득이기 시작하면 할멈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참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여우의 목청마냥 길고 날카로운 부르짖음으로 시작하여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그 울음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욕심으로 일부러 그처럼 엄살을 피우는 것같이 들렸고, 누구의 잘못을 호되게 나무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참을 수 없는 아픔을 아무에게나 호소할 때 사람의 입에서 당연히 흘러나오는 그런 무시무시한 비명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 울음소리가 들리면 나는 벌레 먹은 어금니 하나가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 얼마 동안 나는 할멈의 얼굴이 항상 붉은 이유가 늘 마시는 술 때문인 줄로 알았었다. 그러나 차차로 그것은 기우는 햇살과 유리창에 번득이는 저녁놀이 얼굴에 묻어 지워지지 않는 탓이라고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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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선생, 이래 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
그것뿐이었다. 내 호주머니에 촌지를 밀어 넣던 어느 학부형같이 그는 수줍게 그 말만 건네고는 언덕을 내려갔다. 별로 휘청거릴 것도 없는 작달막한 체구를 연방 휘청거리면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땅을 저주하고 하늘을 저주하는 동작으로 내 눈에 그는 비쳤다. 산 고팽이를 돌아 그의 모습이 벌거벗은 황토의 언덕 저쪽으로 사라지는 찰나, 나는 뛰어가서 그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돌팔매질을 하다 말고 뒤집어진 삼륜차로 달려들어 아귀아귀 참외를 깨물어 먹는 군중을 목격했을 당시의 권 씨처럼, 이건 완전히 나체화구나 하는 느낌이 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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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모르겠다.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쌀에 대한 장인 장모의 그 병적인 집착이 조상 전래의 도령 신앙에서 유래한 것인지, 아니면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인지 나로서는 헤아릴 재간이 없다. 옛날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두 노인의 고향 재령산인 양 행세하는, 자그마치 10년씩이나 케케묵은 그 가짜배기 이북 쌀로 믿음을 다해 잠밥을 먹임으로써 아내 말마따나 장모의 회향병이 진짜로 완쾌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나로서는 당최 알 수가 없다. 만일 통일의 그날이 형편없이 늦어진다면, 만일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면, 만일 장모의 여생이 늦어지는 통일의 날만큼이나 오래 지속된다면, 만일 이인모 또는 리인모 노인의 송환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 앞으로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면 우리 장모님은 두고두고 얼마나 더 많이 회향병을 앓아야 되고, 그럴 적마다 얼마나 더 자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 아니면 이북 쌀 속에 깃들인 도령의 그 신통력에 의지해야 될 것인가.
다만,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뱃구레를 채우기 위해 입안으로 꾸역꾸역 들여보내는 단순한 음식물에 지나지 않는 쌀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쌀 아닌 그 어떤 것, 쌀 이상의 그 무엇, 다시 말해서 사람의 영혼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때로는 병을 고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슬픔을 어루만지기도 하다가 종당에는 구원마저 가능케 만들어주는, 놀라운 신통력을 지닌, 영검한 존재로, 초자연적인 존재로 매우 황감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다는 바로 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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