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011년 10대 히트 상품’에 선정될 정도로 꼬꼬면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농심―신라면으로 대표되는―이 지배하는 국내 라면시장에 일대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재미있는 것은 성공 이후의 반응이다. 라면업계 관계자나 미디어는 꼬꼬면 마케팅의 성공을 단순하게 해석했다. ‘빨간 라면 vs. 하얀 라면’의 대결, 즉 ‘라면 국물=빨간색’이라는 통념을 뒤집어서 성공했다고 본 것이다. 당시 “국내 라면시장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신라면’ 국물이 빨간색인데 비해,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은 ‘흰 국물’로 차별화되었다”면서 역발상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들의 분석에는 한계가 있다. 왜 성공했는지 묻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도외시한 채 물건 자체의 속성에만 초점을 맞춘 탓이다. ‘라면 본래의 맛’을 주장하는 이진선 씨가 꼬꼬면을 ‘흰 국물 라면’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딸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꼬꼬면이 성공한 게 정말 흰 국물의 힘 덕분일까? 꼬꼬면 말고는 하얀 국물 라면이 없을까? 그럴지 않다. ‘나가사끼 짬뽕’의 국물도 하얀 색이다. 좀 더 거슬러올라가자면 1998년에 농심이 내놓은 ‘사리곰탕면’도 흰 국물 라면이다. 당시 농심은 ‘아침 식사 대용’이라는 콘셉트로 뽀얀 국물 라면을 출시했다. 10여 년 뒤에는 ‘후루룩국수’와 ‘뚝배기설렁탕’을 선보였다. 사리곰탕면, 후루룩국수, 뚝배기설렁탕. 이 모두가 하얀 국물 라면인데도 시장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즉 10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은 자신의 입맛을 따르기보다 대세를 좇았다. 당시 라면시장의 대세는 “라면 국물은 그래도 얼큰한 게 제격이지!”였다. 아니, 다들 “라면 맛은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다시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2011년, 꼬꼬면이 세상에 나왔다. 이번에는 10년 전처럼 단순한 ‘신상’의 개념이 아니었다. 대중의 입맛에 뚜렷한 변화가 있다는 사실,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입맛을 추구한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찾는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한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라면을 바라보는 대중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후 유사한 하얀 국물에 새로운 맛을 가미한 ‘나가사끼 짬뽕’, ‘기스면’ 등이 출현했고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기 시작한다. 매운 맛의 빨간 국물 라면에 익숙했던 입맛들이 새로운 라면 국물 맛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관계자들이 ‘새로운 입맛’이 등장했다는 사실보다 ‘국물색’ 자체만을 언급하고 있다. ‘하얀 국물’이라는 물리적 속성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법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면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꼬꼬면이 소비자를 사로잡은 것은 국물이 하얗기 때문이 아니다. 다양한 입맛과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취향과 입맛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현상 자체를 명명하려다 보니 드러나는 단서에 주목하여 ‘하얀 국물 사건’ 운운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소비자의 입맛이나 마음이 국물의 색에 있었는지, 대세보다는 다양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마음에 있었는지에 대해서 반드시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pp.130~131
앞에서 든 예를 보면, 똑같은 야구 경기라고 해도 소비자 집단에 따라 받아들이는 패턴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경기(장)에 품는 욕구, 그리고 야구장에서의 소비성향도 확연히 다르다. 구체적인 소비집단을 파악했으니 마케팅 전략을 제안할 시점이다. 가장 먼저 고려할 점은 “누가 문학구장을 찾는가?”이다. 겉으로는 열 번째 선수, 장외 감독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 다음으로, 성적이나 할인권 배포와 같은 마케팅 활동에 따라 인천SK팬이 경기장을 찾는다. 스포테인먼트가 강화되면 우리 매형과 옆집 아줌씨가 주요 고객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다. 이 두 집단은 구단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세력 확장과 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소비자 집단이다.
현재 SK 와이번스 구단이 스포테인먼트라는 개념과 함께 적극적으로 새로운 야구팬을 끌어들이는 전략은 우리 매형과 같은 소비자 집단에 어필한다. 야구장은 가족 놀이공원이고, 이들은 마치 유원지에 놀러 오듯이 야구장에 온다. 그러므로 구단은 이들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야구장에는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 외에 가족끼리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놀이 활동이 많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장외 감독을 위해서는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차피 이들을 통해 큰 소비가 일어날 일은 없으므로 일단은 구단의 성적을 올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옆집 아줌씨와 같은 사람들이 야구장에 오게 만들려면, 야구장 구경이 남들에게 멋진 나들이로 보이는 게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야구장 방문을 새로운 문화 이벤트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뮤지컬 공연에 가는 것 이상의 붐이 형성될 것이다. 열 번째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소비자 집단은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해서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소비자 집단이다. 따라서 구단에서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차원의 소비 아이템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또 마니아적 소비 행태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선수들과 하는 이벤트를 가장 중요한 체험으로 여기는 집단인 만큼 그 욕구에 걸맞는 자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잠재적으로 가장 강력한 ‘구단의 홍보매체’가 될 수 있는 집단이다.
마케팅에서는 일반적으로 충성도나 관심도를 기준으로 소비자 집단을 구분한다. 이에 따르면 야구 소비자 집단도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즉 야구단에 보여주는 충성도가 얼마나 깊은지, 야구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하는 점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연한 충성도나 관심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충성심과 관심이 구체적인 소비행동으로 이어진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탓이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개념에 기초하여 막연하게 소비자 집단을 구분할 게 아니라 먼저 소비자 집단의 특성이나 행동방식에 대해 획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집단의 고유 속성과 그들의 소비행동이 일어나는 맥락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집단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세분화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인천SK팬에게는 할인권이나 초대권이 먹힐 것이다. 우리 매형 집단에게는 편의시설과 참여형 이벤트가 유효할 것이고, 옆집 아줌씨에게는 공연예술 이벤트 등 야구장에 올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이것들은 구단에서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던 마케팅 활동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이벤트와 전략들이 왜, 어느 집단에 특별히 약효가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케팅 활동들을 추진했을 것이다.---pp.184~186
서로 다른 심리코드의 표현이 가장 극적으로 구현되는 상황은 ‘선거’이다. 사실 선거는 소비심리, 소비행동의 측면에서 볼 때 “시장에 나온 상품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것을 선택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의 소비가 다양한 물건으로 나타난다면, 선거는 소비자의 마음이 구체적인 인물이나 정당이라는 대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잘 보여준다. 형식적으로 선거는 우리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을 뽑는 정치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각기 다른 소비자의 마음을 표현하는 아주 구체적인 소비행위다. 이제 당신이 선거에 참여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을 지지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정말로 당신을, 또 당신의 생각을 잘 대표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가 당신의 어떤 생각을 대표하는지, 그가 선출되고 난 뒤 당신을 위해 무엇을, 어떤 활동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선거란 대체 무엇일까? 선거는 어쩌면 “당신의 생각을 대표하는 그 누군가”를 선출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통령 선거를 생각해보자. 선거 전부터 치열하게 벌어지는 홍보기간을 거치면서 당신은 특정 후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만일 당신이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발적인 정보 수집과 비교 분석”에 나설 것이고, 고만고만한 관심밖에 없다면 “TV토론”이나 “정견 발표” 같은 공개된 프로그램을 통해 정보를 얻을 것이다. “에잇, 더러운 세상” 하거나 “그 놈이 그 놈이지” 하면서 아예 관심의 스위치를 꺼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당신이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뭔가를 사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선물을 해야 할 상황이라도 상관없다. 당신은 분명 “오랫동안 바랐던 아주 좋은 그 무엇”을 사기 위해서 인터넷 사이트를 비교해가며 정보를 구할 것이다. 친구들의 반응도 살피고, 다른 구매자들의 사용 후기도 면밀히 읽어볼 것이다. 고가의 브랜드제품을 “음, 이거! 포장해주세요!” 하면서 덜컥 구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비한다는 건 자신의 (정신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일인 동시에 (경제적인) 손실을 감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느 특정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과 백화점에 가서 럭셔리 브랜드 지갑을 사는 일을 두고 한번 비교해보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물론 누구나 “당연히 대통령 선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백화점 명품관에 가서 브랜드 지갑 하나 사는 것을 더 중요한 일이라고 여긴다(선거관리위원회에서야 국민이 대통령 뽑는 것을 무엇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실제 우리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당신은 “나라의 정기 행사로서의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 “선거날=투표하고 쉬는 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투표하러 가기 전날까지 밤을 새워 후보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처럼 “선거와 소비”라는 개개인의 행동 측면에서 보자면 “선거에 쏟는 심리적 에너지는 백화점에서 가서 좋은 지갑 하나 사는 데 쏟는 것보다 훨씬 약하다”. 여기에서 나는 “왜 그런가?”의 문제를 다루려는 게 아니다. 대통령을 뽑는 일이 명품 하나 사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대통령 선거’가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라는 소비심리의 입장에서 볼 때 백화점에 가서 지갑 하나 사는 것보다 개인에게 덜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선거나 소비행위나 개개인에 따른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p.34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