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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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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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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44*196*20mm
ISBN13 9791193027066
ISBN10 1193027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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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에 손님 순환도 안 되는 빨래방이라니, 동네 어머님들도 젊은 청년들이 저러다 굶어죽진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총각들 돈은 누가 주노?”
"빨래방을 공짜로 하면 뭘 먹고 사노?"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다 말씀드려도 어머님들의 걱정은 조금도 줄지 않는 것 같다.
"대신 재밌는 이야기 해 주시잖아요."
"자주 와서 수다만 떨고 가면 젊은 사람들 귀찮고 힘들기만 한 거 아녀?"
"에이, 공짜가 아니라 세탁비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거라니까요."
---「7p 프롤로그_마을의 하나뿐인 이상한 빨래방」중에서

“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사뭇 비장한 태도에 부장님도 덩달아 ‘이놈들이 대체 뭔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나’ 공기가 긴장으로 바싹 달아올랐다.
“저희가 산복도로에 빨래방을 만들려고요.”
“빨래방에 취재를 가는 거야?”
“아뇨, 회사 돈 써서 빨래방을 짓고 꾸미고 세탁기도 사고 하려고요.”
“허허. 회사가 돈을 준다나.”
“우리 회사 통 크다 아입니까.”
---「11p 이놈들 언제 한번 일낼 줄 알았다」중에서

빨래방 부지를 찾으러 호천마을을 포함해 산복도로 여러 마을을 직접 돌아다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마을들을 볼 때마다 번듯한 대로변 건물보다는 자꾸 ‘빈집’, ‘폐가’ 가 눈에 들어왔다. 낙후된 산복도로의 모습을 대변하는 공간이다. 언론에서는 잊을 만하면 산복도로 마을들의 빈집, 폐가 비율을 보도하곤 한다. 숫자나 통계 말고 진짜 그 공간과, 그곳에 녹아 있는 의미를 빨래방을 통해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8p 역세권보다 계세권」중에서

어느 날에는 요즘 힙하다는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멘트 마감을 덜 한 공장 감성 인테리어 사진을 인테리어 업체에 내밀었다. 노출된 시멘트가 빈집, 폐가가 많은 산복도로를 상징적으로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고, 김기자님, 할매들이 들어오다가 나갈 깁니더.”
“왜요?”
“공사 다 안 끝난 줄 알고예. 오는 사람들이 할매, 할배들인데 그걸 보면 폐가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불편해라, 다시는 안 오지 하지.”
---「55p 빨래방에도 브랜딩이 필요해」중에서

“점심시간만 되면 남들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창 붙이는 기계 앞에서 몰래 연습했잖아.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니 눈치 보며 스스로 했지. 하루는 조장이 ‘뭐 합니꺼?’ 물어보더라고. 모른 체하면서 말했지. ‘창 잘 붙이죠? 나도 이거 시켜 주이소.’ 그렇게 해서 창쟁이가 된 거야. 지금 애들 신고 다니는 나이키 있잖아? 그것도 옛날엔 다 내가 만들었지.”
“어머님이 나이키를 만드셨다고요?”
이름만 들었던 나이키를 만든 여공. 역사책에서 나이키를 부산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 주인공이 현덕순 님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74p 어머님이 나이키를 만들었다고요?」중에서

산복빨래방에는 많은 불편한 점과 단점이 있다. 간판에 적힌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거짓말쟁이 빨래방’이기도 하다. 영업시간을 써 둔 입간판 뒤에는 ‘당일 세탁, 당일 건조’라는, 어느 코인 세탁방에서나 실현 가능한 슬로건이 걸려 있다. 하지만 당일 세탁, 당일 건조를 해 간 고객은 많지 않다. 아마 개업 첫날 빨래를 맡긴 네 명의 손님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당일 세탁, 당일 건조에 성공한 적이 없을 것이다. 앞서 들어온 빨래를 다 하기도 전에 새로운 빨랫감이 항상 쌓였기 때문이다.
---「82p 불편한 빨래방」중에서

“삼촌들이 이래 영상으로 우리 찍어 준 거 나중에 보면 ‘그때 할머니들 참 젊었지’ 할 기야, 아마.”
우리의 기록이 어머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을 남기는 일이었구나. 이제야 어머님들이 영상을 찍을 때면 항상 카메라에 대고 “예쁘게 찍어 줘”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37p 찢어진 흑백 사진」중에서

산복도로만큼 부산의 근현대사를 응축한 공간이 또 있을까.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은 산복도로에 거처를 마련했다. 1970~1980년대 산업화 시기 부산항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달하며 인근의 산복도로는 노동자들의 보금자리였다.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이 휘청일 때 서민들은 재도약을 꿈꾸며 집값이 저렴한 산복도로에 모였다. 하지만 그 이후, 사람들은 산복도로를 떠났다. 근현대사의 주인공들은 어느덧 노인이 됐고, 산복도로는 쇠퇴하며 근현대사 질곡의 흔적만을 간직한 곳이 됐다.
---「186p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산복도로」중에서

기자의 역할은 새로운 팩트와 기사를 발굴해 내는 것이다. 거의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있는 정보나 내용을 색다르게 또는 잘 정리해서 독자들 입맛에 맞게 큐레이팅 또는 재해석하는 것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지역 신문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역의 이야기는 전국 독자들에게 쉽게 닿지 못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기사로만 소모되기 십상이다. 지역에 뿌리내린 언론이라면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재미있게 포장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산복도로라는 지역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는 산복빨래방 기획의 토대가 되었다.
---「214p 그기 기사가 되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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