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뭡니까, 아직도 퇴근을 안 한 겁니까?” 현우였다.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현우가 나타나자 종은은 정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깜짝 놀랐다. “티... 팀장님!” “왜 아직도 퇴근을 안 했습니까?” “아, 저, 그게.....” 현우의 질문에 종은은 마땅히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무리 속상해도 현우에게 고자질을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여직원들이 저를 괴롭혀서요. 오늘도 서류를 이만큼이나 쌓아주고 자기들끼리 집에 갔네요. 죽었다 깨어나도 현우에게는 못 할 소리였다. “일이 조금 밀려서요... 이제 거의 끝나가요.....” “끝나긴 뭐가 다 끝나간다는 겁니까? 아직도 이렇게 많은데.” 심드렁한 말투로 툭 하고 내던진 현우는 종은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의 옆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중 반 정도를 뚝 떼어갔다. 종은이 말릴 틈도 없이 그는 어느 새 서류를 열어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느라 현우는 종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지만 종은은 현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힘들 때마다 깜짝 선물처럼 나타나는 현우를 보며 종은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종은은 그런 노력이 모두 소용없어지리란 것을 예감했다. 그것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제넘은.... 짓일지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옆에서 서류를 넘기고 있는 이 남자가 좋았다. 아무래도 회사를 그만 두지는 못 할 것 같았다. 지아네 패거리들이 더 심하게 괴롭히고, 못 살게 군다고 해도. 현우를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을 테니까. 종은은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한 채로 서류를 넘겼다. 사각거리는 종이 소리만이 고요한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