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서평이 어려운 것은 작성자가 이론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일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좋은 서평자는 이 둘을 고립시키지 않고 최대한 종합하여 책 한 권에 일관되고 총체적인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이때 그는 책과 사회의 상호 작용에 대한 어느 정도 낙관적 전망을 전제한다. 사회적 실천이 책의 의미를 결정한다면 그러한 실천을 유발하는 것이 책의 기능이라는 식의 긍정적 변증법. […]
제기해야 할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이 작은 책의 말들은 왜 그토록 우리의 이해 바깥에 있었는가? 우리와 같은 문제와 방법을 고민하고 우리의 역사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책 앞에서, 꽤나 발전되었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지성은 왜 무력한가? 책과 사회의 외면적 친근성과 내면적 단절을 관찰하며, 나는 또 다시 내가 풀 수 없는 큰 문제만 발견한다.
--- 「김영욱, 〈지성과 사회의 비관적 변증법〉」 중에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근대 서양의 공론장, 시민 사회, 민주주의 연구자 사이에, 특히 18세기 구체제 프랑스의 공론장, 여론, 살롱을 다루는 사회사·문화사·여성사·지성사 학계에 일대 풍파를 일으켰다. 많은 학자는 릴티의 책이 분명 새로운 고전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구체제 프랑스사 분야의 대가인 줄리언 스완은 이 책이 18세기 살롱과 공론장에 관한 기존 연구를 대부분 폐기하는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연구이며 방대한 사료를 천착한 사회사의 “승리”라고 단언했고, 반대로 몇몇 평자는 이 책이 기존 연구자들을 부당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학문적 기여를 과장하는 쇼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 《살롱의 세계》는 열렬한 환호성과 맹렬한 분노를 촉발시킨 문제작이다.
--- 「김민철, 〈18세기 유럽 공론장의 역사를 다시 쓴 젊은 고전〉」 중에서
기존의 주류 연구는 의학을 학계와 문헌으로만 좁게 한정하여 이해했기 때문에 건강 관리와 치료를 위한 수행 등 의학을 둘러싼 다채로운 문화를 고려하지 못했다. 즉 의료를 연구하고 수행하는 주체를 전문 교육을 받은 남성 지식층에만 한정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건강과 치료를 두고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돌봄을 수행하고 치유의 힘을 활용했는지에 관해서는 많은 점을 놓쳤다. 특히 산파술 등 문헌으로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다수의 여성이 만들어 공동체 안에서 함께 수행한 의술을 배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 따라서 이 책은 학계의 문헌을 넘어 다양한 일상의 글, 법조문, 기도문 등을 통해 전근대 여성이 수행한 의학을 살펴보고, 의학의 범위를 몸과 관련된 일상의 돌봄과 수행까지 넓히고 있다.
--- 「이민지, 〈여성이 주도한 의학의 역사: 중세 후기 유럽의 돌봄과 치유〉」 중에서
‘사회’는 이 방대한 저술작업의 흐름 속에서 라투르에게 여전히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그의 저술에서 사회는 자연이나 과학과 구분되는 어떤 분야가 아니며, 자연과 과학의 바깥에 위치하는 맥락이나 배경도 아니다. […] ‘사회적인 것’은 동시에 과학적이고 기술적이며 근대적이고 생태적인 것 모두를 포함한다. 따라서 사회적인 것을 재조립한다는 것은 사회와 짝을 이루는 근대적 개념인 자연적인 것, 과학적인 것, 기술적인 것, 생태적인 것들 모두가 ‘도미노 현상처럼’ 재조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강원, 〈‘사회’에 사회성을 되돌려주다〉」 중에서
루만은 사회학의 사회 이론에 대해 논하면서 사회를 인간학적으로 정초하려는 시도와 실제 사회의 현실 간의 괴리에 주목한다. […] 인간을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적 사회학 이론은 거대한 체계, 반인간주의적인 체계에 대한 비판을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주소로 귀속시킨다. 인간을 강조하는 것, 인간을 고수하는 것은 그 인간이 다르게 체험하고 행위할 수 있는 점점 더 복잡한 연관들 속에서 조건화들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과 다르다. 후자의 경우는 전자로 환원될 수 없는 다른 차원, 즉 근대사회라는 다른 층위, 다른 질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김건우, 〈도달 (불)가능한 사회와 열정으로서의 이론〉」 중에서
콘은 […] 이 책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이 맺는 관계,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까지도 포괄하는 분석을 이루고자 했으며, 그 의도가 책의 제목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입장은 인간 너머의 인류학을 시도하고 있는 과학기술학, 다종민족지, 동물적 전회 등 포스트휴먼 연구들과도 관심의 방향을 같이한다. 콘은 포스트휴먼 연구자들처럼 기존의 인간중심적인 인류학과 사회이론이 인간과 그 외의 존재들을 분리하여 분석했던 방식을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 「이선화, 〈인간 너머의 인류학과 존재론적 전환 논쟁〉」 중에서
진정 돌봄이 개인의, 가정의, 여성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고통스러운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래서 전희경의 주장(《새벽》, 73쪽)처럼 사회적·시민적 돌봄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면(물론, 이것조차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지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책에 제시된 것처럼 그간 등한시되었던, 돌봄이 요구하는 ‘구체적 인간 관계’에 대한 주목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 구체적 ‘관계 맺기’를 가로막는 현실의 장애물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 「김관욱, 〈돌봄, 사건이 아닌 의례로 상상하기〉」 중에서
피터 갤리슨의 《이미지와 논리: 미시 물리학의 물질문화》는 “물리학의 기계들에 관한 책”이며, “미시 물리학의 물질적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해명과 분석을 담은 상세한 역사 서술이자 과학철학적 탐구의 결과이다. 입자물리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지만 대칭성과 고급 이론의 설명과 예측으로 시작하지 않으며, 위대한 수수께끼와 실험을 둘러싼 논쟁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 책은 실험 장치를 만들고 사용하는 복잡다단한 이야기로 독자를 안내한다.
--- 「김재영, 〈이미지 전통과 논리 전통의 만남〉」 중에서
냉전기 과학의 새로운 정치경제는 새로운 과학 담론을 촉발했다. 미국의 경우 그 선도자 중 하나는 전후 과학 연구 체제를 구축한 핵심 과학자·정책가이자 하버드 대학교의 총장이었던 제임스 코넌트(James B. Conant)였다. 코넌트는 전후의 세계를 “과학의 시대”이자 “원자시대(atomic age)”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비롯한 전쟁 연구를 관리하며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정부와 군부의 고위 인사들까지 과학의 작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코넌트에 따르면, 과학에 대한 몰이해는 흔히 과학을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인간의 활동”으로 양극화하여 과학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공포를 낳았고, 그 결과 과학이란 명암이 공존하는 “많은 것을 드러내는 과정”일 뿐이며 우리가 원자 폭탄을 비롯해 그 과정에서 산출되는 ‘많은 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했다.
--- 「서민우, 〈오웰의 주제들: 과학지식사회학의 전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