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태복음 5:1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오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 제자들이 모인 바로 그곳에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장소를 이동하셨다는 것이다. 열정 없는 사람도, 구경꾼도 못 따라온다. 예수님을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이 따라 올라갈 수 있다. 성경은 그 사람들을 ‘제자’라고 부른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산상수훈은 일반 사람들에게 하신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다. 누구나 다 듣고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힘들지만, 어렵지만, 손해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산에 따라 올라갈 정도로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싶고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음성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여기에서 ‘구하라’는 말인 ‘아이테오’는 특별한 말이다. 성경 원어적 개념으로는 기도한다는 뜻이요, 목적을 삼는다는 뜻이요, 온 힘을 다 기울여 힘쓴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seek(찾다)’라고 번역한다. 이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 힘쓰라는 것이다. 그리할 때 이 모든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즉 사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등 이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분이 주셔야 받을 수 있다. 내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그는 그의 일을 하신다. 주시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시지만, 내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기에 주실 수 없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바로 되어야 성공이 온다. 그러므로 너희는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 노후대책보다 더 중요한 사후대책이 마련되어 있으니, 노후대책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내일의 염려를 당겨서 미리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일단 오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사후에 하나님 앞에서 상 받을 만한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 팔복 선물 세트의 첫째도 천국이요 마지막도 천국이니, 천국이 얼마나 중요한 복인가. 그래서 나는 늘 기도한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천국 잊지 않도록, 천국 잃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귀한 복임에도 우리는 늘 양다리를 걸치며 살려고 한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당부하신 첫 번째 이야기도 이런 맥락이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결국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말씀은 다른 마음먹지 말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그러고 보면 십계명의 첫 계명도, 팔복의 첫 번째 복도 오직 한마음이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천국을 향한,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오직 한마음! 천국은 이런 자들에게 주시는 복이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 당신의 보물은 무엇인가? 세상의 것을 보물로 삼으니 마음에 걱정과 염려만 들어간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런 것들을 보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물로 삼으라고, 그분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면 ‘원 플러스 올’의 복이 임할 거라고 말이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진정한 복을 주시려는 예수님께서 ‘One+All’을 말씀하신다. 여덟 가지 본질의 복을 말씀하신다. 이 여덟 가지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받으면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시리라고 약속하신다. ‘One+All’은 세상적인 용어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시는, 본질의 복과 더하여 주시는 복들을 의미하는 용어다. 이 복이 예수님을 닮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임을 확신한다.
- 살다보면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그 누구도 위로자나 해결자가 되어주지 못하는 그때! 그것이 죄의 문제든, 돈의 문제든, 사람의 문제든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으로 그 문제를 가지고 나와 솔직하게 내려놓고 기도해보라. 기도하다 보면 울기도 하고, 찬양하다 보면 또 울기도 하겠지만 주께서 그 눈물을 병에 담으시고 귀히 보시며 위로하시고 응답하시고 해결해주실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죄가 생각날 때마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삶의 여러 가지 문제 앞에서 눈물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그 간절함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해결하시며 위로해주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은 위로자시니까. 어쩌면 나보다도 당신은 더 많은 위로 속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단지 잊고 살아온 게 아닐까.
- 가출한 아이들도 데리고 살고, 전과자들도 데리고 오래 살았다. 그들은 좋은 부모 밑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어릴 적 고아원을 전전하며 살아온 사람, 학생 때 너무 일찍 술 담배를 배우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집에서 쫓겨난 사람, 부모의 이혼 후 아빠의 재혼과 교도소행으로 인해 계모와의 갈등으로 가출한 아이도 데리고 살았었다. 불쌍한 걸 어쩌겠는가.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셨고, 그분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도 불쌍히 여겨주셨다. 아버지 사랑의 비유라고도 하는 ‘탕자’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협박해서 돈을 가져간 아들이 돈을 다 탕진하고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는 그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그 아들을 받아주고 용서하며 함께 살아간다. 탕자를 용서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긍휼’이다. 당연히 야단을 치고 쫓아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에는 보복이나 앙갚음이 없었다. 긍휼히 여기지 않는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긍휼히 여기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돌아오면 “너, 돈 다 어디다 썼냐? 남은 거 다 내놔! 당장 나가! 꼴도 보기 싫어.” 하지 않으시고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우시고, 송아지를 잡고, 신을 신겨주시며 옷도 입혀주신다. 그 탕자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전혀 없다. 수많은 죄 가운데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욕심으로 그렇게 된 것인데, 그 죄마저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하심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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