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전문의, 국경없는의사회 회원으로 2005년 9월부터 2006년 3월까지 니제르에서 자원의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현재 서울녹색병원 소아과 화장, 인하대병원 외래교수로 근무하고 있으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MSF가 지진 이후에 세운 계획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트리니테의 빈자리를 메운 세인트-루이스 병원Saint-Louis Hospital이었다. MSF는 2005년 10월, 카시미르 지진이 발생했을 때부터 경이로운 기술을 이용해 병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야심 찬 야전 병원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지진 발생 사흘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프랑스와 벨기에 MSF 물류 본부는 45톤의 장비를 비행기에 실어 아이티로 보냈다. 안타깝게도 포르토프랭스 공항은 여전히 혼란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비행기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착륙하는 수밖에 없었다. 화물 운반팀을 조직하여 장비를 트럭에 옮겨 이동한 후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병원을 조립하기 위한 모듈을 붕괴된 고등학교 운동장의 축구장으로 옮겼다. 현지에서 고용된 수백 명의 인부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타일 바닥재를 깔고 발전기와 콤프레셔를 연결했다. 48시간 동안 1,000평방피트 정도 되는 9개의 하얀 천막이 공기로 채워지면서 땅 위로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지진이 포르토프랭스를 휩쓸고 지나간 지 일주일이 되지 않은 날 MSF는 200개의 침상이 놓인 병원을 운영할 수 있었다. 자체적인 전기 설비로 가동되는 멸균 수술실과 집중치료실도 갖춰졌다.--- 「1장. 선 채로 아이를 낳는 산모들」
4월 22일과 23일, 남부 도시인 부타레Butare에서 150명의 투치 족 환자가 병원에서 MSF 의료인이 보는 가운데 도끼에 맞아 죽었다. 후투 족 군인이 임신 7개월째인 현장활동가의 친구였던 르완다 간호사를 잡았을 때, 벨기에 의사가 걸어 나갔다. 그들은 사빈느Sabine를 붙잡았고 나는 완력으로 만류하며 말했다. ‘사빈느를 내버려 두시오. 사빈느는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고, 그녀는 후투 족이오.’ 그 무리들 가운데 대장 격인 사람이 나를 주의 깊게 쳐다보고는 주머니에서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사빈느의 이름이 있었다. 그는 종이와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렇소, 당신이 옳소. 사빈느는 후투 족이오. 그렇지만 그녀의 남편은 투치 족이오. 따라서 그의 아기는 투치 족이 될 거요.’ 나는 르완다에서는 아이들이 부계를 따른다는 잔인한 현실을 깨달았다. 사빈느는 죽었고 아기도 그렇게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