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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핀느의 꽃(개정판) 4
eBook

엘핀느의 꽃(개정판) 4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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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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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07월 22일
이용안내 ?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0.95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2.1만자, 약 7.1만 단어, A4 약 139쪽?
ISBN13 979115682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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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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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한하연


쓰는 일이 좋아서 시작했다가 지금도 쓰고 있는 평범한 글쓴이.
동화와 귀여운 걸 좋아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면도 있는 그런 사람.

▣ 출간작

그녀는 수학을 배운다
엘핀느의 꽃
붉은 벨벳 위 하얀 진주 한 알
달콤한 말 세 방울
푸른 단검과 흰 장미
집(House)(단편집)
비밀의 숲(공저)

▣ 출간 예정작

맑은 하늘 푸른 잎새
목련화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주 늦은 밤이었다. 저택은 고요하게 잠겨 있었다. 다닥다닥. 빠르지 않은 속도로 마차가 멈추고, 마차 바퀴가 돌로 포장된 도로를 가볍게 긁으며 섰다.
타박. 마가렛은 어느새 말에서 내려 다가온 지크프리트의 손을 잡고 내렸다. 형식상으로는 지크프리트가 백작가의 호위를 맡고 있기 때문에, 무도회장에서 물러나 저택에 같이 오는 것 정도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검은빛에 물들어 있는 남자의 장갑 위로 반짝, 여인의 팔찌만 하얗게 빛났다.
“다이오스만.”
마가렛이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마중 나와 옆에 고요히 서 있는 집사장을 불렀다.
“네, 마님.”
“내가 없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잠시, 테오 도련님이 잠에서 깨셨던 것 외에는.”
“깼었어요?”
마가렛이 시선을 머리가 희끗희끗한 집사장에게 던졌다. 혹시나 하는 염려가 그녀의 눈길에서 잠시 묻어났다.
“괜찮았습니다. 지나가시던 자작 부인께서 다시 잠든 것 같다고 말씀했으니까요.”
다이오스만은 비올레타에게 매우 정중했지만 마가렛에게 칭할 때도 마님의 언니 되시는 분이, 라는 식의 친밀한 느낌이 드는 표현은 결코 쓰지 않았다.
“언니가, 테오의 방에 들어갔었어요?”
“음……. 확답해드릴 수는 없지만.”
별일이야 없었겠지. 별일이야 없었을 거야. 최근에 이상한 현상은 있지 않았다. 아이는 안정적이었고, 분명히 그 전 같은 기이한 일은 일어난 적 없었다.
“들어가시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잠시 잠이 오지 않아 복도를 거닐고 계셨다고 하더군요.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자작 부인께서는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예민하신 데가 있으신 분이어서 언제나 약간씩 불평사항을 말씀하시고는 하는데, 그때는 그저 유하게 대답하시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걸음걸이도 평소와 다름없으셨고요.”
“그렇군요.”
두근, 심장이 잠시 뛰었지만 마가렛은 다시 평정을 유지했다. 다행이다. 언니가 뭔가 자신에게 나쁜 일을 할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가렛은 비올레타의 경솔한 면을 알았다.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흘끔, 그녀는 옆의 남자를 보았다.
지크프리트는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처럼, 마치 없는 사람처럼 옆에 있을 뿐이었다. 언뜻 보면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지크프리트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마가렛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어떤 문제인지 결코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 이상의 대화 없이, 그들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같이 따라간 인원과,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인원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사방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그때였다.
“엄마.”
속삭임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가, 계단참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너무도 기척 없이 서 있어, 대부분 그 자리에 아이가 있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놀란 마가렛의 목소리가 조금 억눌린 채 비어져 나왔다.
“테오? 왜 거기에 서 있니?”
타박.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 아이의 하얀 맨발이 닿는 소리가 울렸다. 마가렛과 일행들이 서 있는 곳에는 두껍고 부드러운 양탄자가 깔려 있었지만, 아이가 서 있는 곳은 왕래가 적었기에 그저 단단한 대리석만이 깔려 있을 뿐이었다. 얇은 반팔 잠옷이 아이의 하얀 살결 위에 입혀져 있어, 새카만 어둠 속에 또렷한 빛줄기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아이가 약하게 한번 웃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타다닥. 마가렛이 단걸음에 테오에게 달려갔다. 치맛자락이 제멋대로 발에 휘감기며 거추장스럽게 치렁거렸다. 그녀의 태도는 기품 있는 귀부인의 그것이 전혀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아이 앞으로 바짝 다가간 그녀는 아이를 포근하게 안고 시선을 맞췄다.
“무슨 일이 있었니, 테오?”
아이의 말간, 회색빛 눈동자가 그녀 안으로 들어왔다. 죽은 남편과 똑 닮은 아이. 남편 살아생전 느껴 보지 못했던 애정을 느끼게 해준 아이. 위태롭게만 느껴지던, 쓸쓸한지도 몰랐던 마음에 위로가 되어준 아이.
‘어쩌면 남편도 이 아이처럼, 그렇게 조용히 나를 사랑했는지도 몰라.’
그, 제 몫이 아니었다 믿은 애정이 실상 자기 것이었음을 알았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과 충만감. 그것을 이 아이가 가져다준 듯했다. 아이가 남편 대신 남아 차분히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사랑이었다 말할 수 있었을까? 그가 가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지는 못했을지언정, 서로의 마음 한편에 아주 조금은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계속 옆에 있었다면 그 자리는 어쩌면 점점 넓어져, 먼 훗날에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 있을 수 없게 된 일. 그는 죽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 남자는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와 결혼할 것이다. 그 모든 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순수(純粹).
“아무 일도 없었어요, 엄마. 그냥, 어쩐지,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렇구나.”
의젓하기는 해도 아직 아이이다. 늦게까지 자신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외롭기도 했겠지.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혼자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아니, 혼자 서 있게 된다 할지라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의지처가 되어주자. 그게 엄마니까.
마가렛은 테오를 바짝 끌어안았다. 작디작은 체온이, 다정하게 다가온다. 얼굴에는 상냥하고 보드라운 미소가 번지고, 푸르디푸른 눈동자는 작은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찼다.
“테오, 엄마가 테오를 불안하게 했나 봐. 미안해.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게. 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일찍 돌아오든지, 아니면 꼭 테오를 데려갈게.”
“엄마, 아니에요. 나는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
“응, 엄마 여기 있어.”
마가렛이 가만히 속삭였다. 아이가 작은 손으로 그런 엄마를 꼭 끌어안고,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그 온기가 마치 제 배 속에서 나온 자식을 품고 있는 것만 같아, 마가렛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싸늘한 어둠 속에 순수한 빛 같이 서 있는 작은 아이. 마가렛은 테오의 눈꺼풀 위로 가만히 입을 맞췄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뒤에서는 밤의 어둠에 물든 채, 지크프리트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 지나고 다시 낮이 왔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찾아왔다. 어둠에 잠겨 있던 사물은 빛을 되찾고, 모든 것은 생기로웠다. 어제의 갈등은 모두 사라진 것처럼 지크프리트는 정확하게 정시에 저택을 나섰고, 마가렛은 익숙하게 배웅했으며, 비올레타는 늦게까지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다이오스만은 아무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자기 일을 하고 있었으며, 헬레디케는 평소의 꼿꼿한 모습 그대로였으나 주인의 행보를 염려했고, 스틸록시는 활달하였으나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테오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저택의 모두, 이 저택의 주인은 테오와 마가렛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 젊은 공작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상냥한 마님이 언젠가는 새로운 짝을 만나게 되리라 생각은 했지만, 그 상대가 결코 저 마음속을 알 수 없는 남자는 아니었다. 자신들의 주인에게는 좀 더 편안하고 자신들이 불안하지 않을 상대가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공작은 여황의 개였다. 충복이라는 표현을 넘어선, 주인의 손짓 하나면 어떤 짓이라도 할, 날카로운 이를 가진 흉포한 투견. 그 잔인하고 강렬한 명성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시듀르켄 백작가는 영향력이 강한 가문이다. 사용인이라 하여도 당연히 따라 들어오는 온갖 소문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들의 소중한 마님에게 친절하다 하여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들은 믿고 있었다. 마님은, 마님은 어리석지 않다고. 그들은 마님의 판단력을 믿었다. 그러나 감정은 언제나 사람을 어리석게 한다. 요즘 들어 때때로 보이는, 마가렛과 테오를 대할 때 사람다워 보이는 공작의 표정에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그래서 그들은 한편으론 지독하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집사장과 하녀장들이 말해주지 않아도, 그 밑에 딸린 모두는 다 알고 있었다. 지크프리트와 마가렛은, 분명 올해가 가기 전에 결혼하게 될 것이다. 지크프리트가 테오에게 보여주는 태도는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그것과 같았으며, 마가렛은 그 사실을 묵인하고 있었다.
나란히 테라스에 앉아 나지막이 대화를 나누며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게임을 - 공작이 하얀 돌과 붉은 돌, 노란 돌을 가지고 하는 호키 놀이를 테오와 하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차를 나르러 들어갔던 하녀가 실제로 찻잔을 떨어트려 깼을 정도였다. 물론, 공작은 아이라 하여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테오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으니까 - 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가족의 단란한 한때와 유사했다.
맙소사.
사용인들은 동요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을 이끄는 중간관리자들이 흔들리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마가렛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까스로 자신들을 추스를 수 있었다. 집단의 분위기라는 것은 그렇다.
누군가가 위에 서 있느냐, 가장 위의 힘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달라지는 것. 공작에 대해 험담을 하거나 마가렛에 대해 놀랐다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어느 조직에나 있을 수 있는 작은 흠집 정도였다.
시듀르켄 백작가는 공교하고 긴밀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들은 동요는 하고 있었지만 자기 일들을 한 번에 무너트릴 정도로 불안해하지는 않았으며, 결혼에 대해 찬성할 수는 없었지만 나서서 감히 반대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상황은 그랬다.
테오가 마가렛에게 매달렸다. 어젯밤 이후로 갑자기 응석이 늘었지만, 아이들은 언제든 달라지는 법이기에 마가렛은 그런 아이를 안아 들었다. 이제 정말이지 제법 무거워져서, 후들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엄마. 나, 가고 싶은 데가 있어요.”
“어디를?”
“엘핀느 언덕.”
덜, 컹.
그녀의 심장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짜로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맥박이 수도 없이 빨라졌다. 저도 모르게 그려지는 이름. 그 연둣빛의 고운 눈동자. 자신을 쓰다듬던 손길.
테일렛.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이의 입술에서는 예상한 말들이 흘러나왔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엄마. 만약 안 된다고 하면……, 가자고 조르지는 않겠지만, 엄마, 나는 분명 계속……. 이렇게 그리워할 것 같아요.”
아이의 목소리는 간절했고 절박했다. 그것은 살기 위해 자연스레 호흡하거나, 배고플 때 음식을 강렬히 갈구하는 것처럼 본능이었다.
“아니야, 테오.”
부드럽게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마가렛이 슬프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애써 밝게 웃어보려 했지만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심장의 구멍을 메우기라도 하듯, 아이가 그녀의 안으로 좀 더 파고들었다. 이 아이는, 나를 채워주었다.
“가자꾸나. 그곳으로.”
팔락.
활짝 열려 있던 창문으로 바람이 불었다. 피가 이어진 모자지간처럼 똑 닮은 붉은 머리카락이, 하나처럼 엉켜서 흔들렸다. 막 시작되려는 뜨거운 열기를 식힐 만큼, 시원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마가렛이 테오에게 속삭였다.
“이번엔 분명히 네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이것이 어젯밤에 약속한, 너에게 내가 주는 선물이란다. 아니, 내가 주는 선물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어쩐지 그녀는 울고 싶어졌다.
“너를 생각하는 또 다른 사람이 너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르겠구나.”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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