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려오고 난 후, 마가렛은 저택 내 사람들에게 당부와 교묘한 협박이 섞인 강력한 명령을 내려야 했다. 어겨서도 안 되고, 결코 새어나가서도 안 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말을 해 받아들이도록 할 것이지만, 지금 말해서는 안 되는…….
마가렛이 백작의 숨겨뒀던 아이인 테오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다니.……’
마가렛은 한숨을 폭 쉬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그녀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것이 일시적인 거짓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교묘히 감춰지고 진실인 양 은폐된 거짓말은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지, 때가 되면 드러난다.
그러나 지금은 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야 할 때였기 때문에, 자신이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섯 살 아이치고는 의젓하게, 그러나 애정이 담뿍 담긴 목소리로, 병을 앓은 후유증으로 자신과 관련된 기억들을 잃은 사랑하는 엄마에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그 기대에 찬 마음을 저버리기가 힘들었다.
그녀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새기듯, 그녀의 마음판 하나하나에 새기듯, 아이는 그렇게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알려주었다. 비록 자신은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었고, 자신이 테오를 낳았다면 나이상으로도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도 이제는 어쩐지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신의 아이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같이 안겨서 잠들지 않고, 잠잘 시간이 되면 아이는 의젓하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하지만 가기 전의 사랑스러운 입맞춤과, 떨어지기 싫다는 듯 꼭 잡는 고사리 같은 손의 온기는 언제나 마음을 뭉클하게 하였다. 게다가 놀랍도록 붙임성이 좋고 적응력도 빨라, 저택 내의 사람들은 이내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누가 그 아이를 미워할 수 있으랴? 아이다운 보드라운 뺨은 귀엽게 살이 토실토실 올라 있고, 누구보다도 맑아 보이는 회색빛 눈동자는 은빛 구슬처럼 호기심에 반짝거렸다. 백작을 닮아 잘생긴 얼굴은 어릴 때부터 현연히 드러나, 어쩐지 마가렛에게 진짜 엄마나 된 듯 뿌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때로는 대범하기까지 했다.
난폭한 말에게도 상냥하게 말을 붙이는 아이의 모습에, 마구간지기도 백작님의 아이가 맞는 것 같다고 인정하였다. 빵 굽는 주방장은 그 아이를 위해 귀여운 동물 모양의 빵을 자청해서 구웠고, 바닥을 투덜거리면서 닦는 성질 나쁜 하녀마저도 그 아이를 위해 몰래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러나 평민 아이가 쓰는 것이라 거친 아이용 장난감을 챙겨놓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이는, 언제나 그런 작은 선물들을 진심으로 기쁘게 받고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다. 때로는 그에 더해 안아주고 뺨에 뽀뽀를 해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실 그리하여 은연중에 사용인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질 정도였다.
아이는 귀족이되 귀족 같지 않은 아이였다. 평민들과의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친근함과 거리감 없는 편안함이 있었다. 동시에 귀족으로서의 기품도 같이 배어들어, 누가 봐도 귀족의 자제 같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오만하게 거들먹거리지 않고 친절하였다.
모두들 그 아이가 자신을 향해 사랑스럽게 웃어주기를 바랐고, 마가렛의 엄한 명령이 아니어도 모두 자청하여 아이가 상처 입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귀엽고 순수한 아이를 바라볼 때 어떤 감정인지 생각해보라. 그리하면, 그리하면……. 자신의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은, 마가렛 못지않게 모두들 조심스러웠다. 매우 침착한 하녀장인 헬레디케마저도 긴장한 것이 보일 지경이라, 마가렛이 웃으면서 어깨의 힘 좀 풀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님, 정말이지 걱정이 된단 말입니다.”
희미하게 웃음을 띠며, 충직한 하녀장은 대답했다. 잘 웃지 않는 그녀도, 테오에게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관대했다. 언제나 꼿꼿하리만치 대쪽 같던 그녀가, 작은 아이의 마음이 상할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정말로 의아한 것이었다.
“마님께서 물론 잘하시겠지만 말입니다.”
모두들 안 그런 척하고 있었지만, 다들 오늘의 소식을 전할 역할을 맡은 그들의 마님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반들반들하게 보이도록 계단의 난간을 닦고 있던 제일 꼬맹이 하녀인 샬롯까지도, 신경은 온통 작고 귀여운 도련님 방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 가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 소식을 그들의 마님이 전한다는 것이었다. 같이해온 시간은 고작 6개월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그들의 마님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알고 있었다.
지긋하게 나이가 들은 집사장인 다이오스만이 열어주는 문으로 테오가 들어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용인들은 각자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지만, 마가렛의 눈에는 그들의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사랑받고 있구나, 테오.’
마가렛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엄마!”
착 달라붙는 아이를 마가렛은 부드럽게 안았다.
‘아아, 이래서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가 가장 예쁘고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런 어리석은 오류는 범하지 않으려 했건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엄마다. 내 아이가 가장 예쁘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누구보다도 사랑스럽다. 놀랄 만큼 화사한 꽃잎 같은, 부드러운 붉은 머리카락을 다정히 쓸어 올리며 마가렛은 아이와 눈동자를 맞췄다. 수그린 그녀는, 위압감이 들지 않도록 눈높이를 잘 맞추었다.
“테오, 잘 들어야 해. 엄마가 오늘은 너에게 중요한 말을 할 거야. 놀라지 말고.”
다정히 아이의 뺨을 쓰다듬으며, 무엇보다 보드랍고 소중한 자신의 아이를 마음으로 보듬으며, 마가렛은 천천히 말했다. 이상하게도, 참으로 이상하게도 자신의 남편을 시체로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아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그와 부부였구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사실 처음 차디차게 그가 돌아왔을 때, 마가렛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아서,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굴에도, 몸에도 아무런 외상이 없는데, 두근두근 뛰고 있던 심장만이 싸늘하게 멈춰 있어서, 그녀는 가슴팍에 먼저 손을 대어보았다. 장난을 칠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질 나쁜 장난일지도 몰라,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코와 입 쪽으로 손을 가만히 대봤다. 어쩌면 자신의 남편은, 아주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남편은 뭔가 대단해서, 그렇게 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그 순간은 뭔가에 홀린 듯 그렇게 있을 수 없는 바람만이 마음에 가득 찼었다.
닿는 것은 싸늘해진 얼굴뿐. 경직되어 가는 근육 밑의 차가운 입술뿐. 확 하고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목덜미에서부터 시작된 소름은 몸으로 급격하게 퍼지면서, 어느새 떨림을 동반했다. 후들후들 떨릴 것 같은 손이 찬찬히 백작의 목덜미로 향했다. 뛰어야 되는데. 분명히, 뛰어야 되는데. 그러나 경동맥이 팔딱팔딱 뛰어야 하는 곳 또한, 굳어버린 근육만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절감했다.
그가…… 죽었구나!
헤이스텐, 나의 남편.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기를 나누던 남편, 마음이 가까스로 닿았다고 느낀 남편, 그의 단단한 어깨는 이제 더 이상 내 앞에 서지 않고,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나에게 맞춰주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
울어야 하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거짓말 같이 흘러갔다. 하녀장이 일으켜 세울 때까지 마가렛은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실감하지 못했다. 황제께서 친히 장례 날짜를 정해주고 참석 여부까지 확연히 밝히셨기 때문에, 모든 것은 더더욱 정신없이 흘렀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이 흐르고, 장소와 사람이 정신없이 바뀌더니, 그녀는 어느새 장례식장에 서 있었고 어느새 그의 아이를 찾아 나섰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아이는 내 앞에 있다.
마가렛은,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언제나처럼 익숙한, 혼자였던 밤에도 울지 않았었다. 눈물이 나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도 기묘했고,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아이를 보자 그녀는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고.
“테오, 아버지는…….”
툭. 툭. 후두두두둑.
“돌아가셨단다.”
갑자기 마음이 미어져 왔다. 그가 죽었다. 남편이 죽었다. 인생에 비추어보면 같이한 시간은 짧았고, 그가 찾아오는 밤의 시간은 자신에게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보이기 위함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낮 시간의 그는 좋은 남편이었다.
그러던 남편이 죽었다. 영영 자신의 옆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냉랭한 눈빛으로, 딱딱한 목소리로, 그리로 가면 물이 튄다오, 하면서 자신을 당겨 안쪽으로 세우고 대신 그쪽에 서주는 남편은 이제 없다.
아아, 그랬구나. 남편은, 그저 일 때문에 멀리 떠나간 것이 아니다. 나 아닌 다른 여인을 만난다, 속이고 자신의 아이에게 간 것도 아니었다. 1년이고 2년이고 기다리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거다.
자신의 아이인 테오가 자신을 바라봤다. 맑은 회색빛 눈동자에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눈물이 샘물처럼 쏟아져 내린다. 자신에게 안긴 아이의 몸이 처연하리만큼 떨렸다.
‘아이가 이리 우네.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달래줘야 하는데, 좀 더 다정히 괜찮다 말해줘야 하는데. 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마가렛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아이에게 부고를 전할 때부터, 계속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는 사실을. 백작이 죽은 이후로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펑펑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늦게 인식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계속 슬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의 자리가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오지 않는 목소리보다 먼저 나온 목소리가 있었다. 잔뜩 목이 막힌, 그러나 그 낭랑함을 잃지 않은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보다 더 먼저 귀에 파고들어왔다. 아이가 엄마의 눈가를 쓰다듬으며, 엉엉 울면서 말을 이었다.
“엄마……, 엄마, 괜찮아요……?”
그 순간, 마가렛의 마음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뭔가가 차올랐다. 작고도 작은 아이가 자신과 같이 울어주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듯. 이 슬픔은 그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듯. 아아, 그랬다. 자신의 슬픔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사용인들도, 어느새 모두 울고 있었다. 그네들도 계속 울고 싶었다. 백작은 좋은 주인이었다. 냉정하고 차갑게 일을 지시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곤 했지만, 누구나 하나둘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상벌이 분명한 주인이었다. 귀족이었지만 괜찮은 이였다. 그들은 시듀르켄 백작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꾹 참고 또 참았었다. 자신의 마님인 마가렛이 장례식장 외에서는 결코 울지 않았기 때문에.
슬픔이 홍수와도 같이 밀려오고, 넘치고 넘쳐,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애도 가운데서, 모든 이들이 같이 울었다. 시종장들도, 하녀장도, 수석 시종과 수석 하녀도, 시종들과 하녀들도, 마구간지기며 요리사며 정원사도. 저택 내 작은 아이 방에서 시작된 울음은 계속 퍼져서, 어느새 밖에 있던 사람들까지 백작을 떠올리며 울었다. 모두 다 같이.
그랬다. 마가렛, 그녀는 슬펐지만, 그녀는 괜찮았다. 자신의 소중한 아이가 있었기에.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