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가끔 한 번씩 익살스런 표정으로 내게 말합니다. “토익 구백오십 점, 엄마 덕분입니다.” “건망증, 엄마 덕분입니다.” “한 미모, 엄마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농담처럼 던지는 그 말이 어쩐지 싫지 않습니다. 엄마를 만나면 나도 아이처럼 엄마에게 말해야겠습니다.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것, 엄마 덕분입니다.” “엄마 덕분이라 말할 수 있는 엄마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책을 내면서」중에서
엄마는 가격이 적힌 차림표를 한 번씩 다시 올려다본다. 뜨거운 포일 살살 벗겨 보드랍고 쫄깃한 조갯살을 맛나게 먹으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내내 비싼 밥값 계산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여 여느 때 같으면 매워서 건드려보지도 않았을 회무침 접시 위로도 젓가락질이 분주하고 맑게 끓인 탕은 포장해달라고 하라며 건드리지도 못하게 한다. 그 비싼 거 뭐 먹을 거 있느냐는 말도 진심이고 백합이 제철이라 꽉 찬 속살이며 국물이 달다는 말도 진심이라는 것 정도 이제는 읽을 수 있다. -「모두 다 진심」 나란히 걸어가는데 뭔지 자꾸만 자세가 불편하다.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아이가 내게 팔짱을 꼈던 거다. 나도 거북하지만 아이도 영 불편하긴 마찬가지인가 보다. “거참 이상하네, 왜 엄마랑은 자세가 안 나오지?” “뭐가?” “아! 맞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 그러면서 내 손을 깍지 껴서는 제 호주머니 속으로 끌어들인다. 따뜻하다. -「스무 살」
집으로 오는 내내 ‘새끼’라는 어휘가 아릿하게 가슴 한가운데 남아 있었다. 얼마나 애틋한 말인가. 아무런 수식도 설명도 필요 없는 얼마나 원초적인 말인가. 그래서였는지 꿈을 꿨다. 막 잠이 들었을 때는 작은아이 꿈을 새벽에 다시 잠이 들었을 때는 큰아이 꿈을. 내 새끼들. 멀리 있어도 옆에 있어도 늘 시리고 버겁고 뿌듯하며 눈물겨운 이름이다. -「새끼」
“니가…… 쉰이냐?” 쉰이 된 나보다 딸이 쉰 살이 된 것이 엄마에게는 더 큰 의미로 자리하는 것 같다. 구태여 세고 싶지 않은 나이라는 숫자를 머리카락 희끗해진 자식의 나이로 확인하게 되는 심정은 생각보다 복잡한 모양이다. 이번에는 내가 물끄러미 엄마 얼굴을 들여다봤다. ‘우리 엄마, 참 예뻤는데…….’ -「니가 쉰이냐」
터덜터덜 걷다가 굴다리 시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팝콘처럼 뭉게뭉게 피었던 벚꽃이나 수영하러 가느라 마을버스를 타고 은행나무 길로 접어들었을 때 양쪽 길가로 4월 오후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부푼 개나리 군단을 보았을 때처럼 꽃이 예쁜 순간은 언제나 우연히 낯선 곳에서였다. 예고편이 화려했던 영화가 재미없고 오래 계획했던 꽃구경이 싱겁듯 무심히 지나치다 만난 길가 꽃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여기, 막차를 타고 나가 외박을 하는 여자가 있다. 그 밤, 방문 모서리 모양으로 쏙 들어간 이마를 갖게 된 여자는 눈앞에 총총 돋아난 별들을 따라 또 다른 대기권으로 들어갔더랬다. 샌디에이고에서 성저리까지 종횡무진, 어느 곳에선 '3월 7일생의 Lee'가 되었고 다른 곳에선 '황당 여사'가 되었으며 그 와중에 당연하지 않게도 어느 엄마의 '새끼'가 되었다가 다른 '새끼'의 엄마로 살아보기도 했더랬다. 그 와중에 당연하게도 엄마는 이제 더는 강하지 않은 엄마가 되었으며 새끼는 엄마의 손을 끌어다 제 호주머니 속에 품을 줄도 알게 되었더랬다.여자가 엄마였을 때, 여자는 새끼를 품은 채 아비의 묘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여자가 새끼였을 때, 아비는 외투 속에 여자를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성저리의 그 밤길엔 부싯돌이 널려 있어 총총 빛났더랬다. 삶이 우리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일도 부싯돌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삶과 삶이 부딪쳐 자체발광하기. 품어졌던 존재가 품어주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 우리를 품어주는 것들은 그게 무엇이라도 모두 엄마다. 품어줄 수 있기에 우리는 이미 엄마이다. 엄마의 마음들로 이루어진 대기권 안에서라면 진심이 아닌 마음이란 없기에. 막차를 타고 나갔던 우리는 외투 속에 품어진 채 그렇게 다시 돌아온다. 어둔 밤길에 부싯돌이 총총하다. 천상에는 없는 별자리. 그러니까 이건 모두 엄마 덕분. 김현영(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