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로 길동이 자호를 활빈당이라 하여 조선 팔도로 다니며 각읍 수령의 불의로 약탈한 재물이 있으면 탈취하고 가난한 백성이 있으면 구제하며 백성을 침범치 아니하고 나라에 속한 재물은 추호도 범치 아니하고, 이러므로 모든 도적이 그 의치를 항복하더라. 하루는 길동이 제인을 모으고 의논 왈,
"이제 함경 감사가 탐관 오리로 백성의 피를 빨아먹어 백성이 다 견디지 못하는지라. 우리들이 그저 두지 못하리니, 그대들은 나의 지휘대로 하라."
하고 하나씩 흘러 들어가 아무 날 밤에 기약을 정하고 남문 밖에 불을 지르니, 감사 대경하여 그 불을 구하라 하니 관속이며 백성들이 일시에 내달아 그 불을 구할사, 길동의 수백 정당이 일시에 성중에 달려들어 창고를 열고 전곡과 군기를 수탈하여 북문으로 달아나니 성중이 요란하여 물끓듯 하는지라. 감사 불의지변을 당하여 어찌할 줄 모르더니, 날이 밝은 후 살펴보니 창고의 군기와 전곡이 비었거늘, 감사 대경실색하여 그 도적 잡기를 힘쓰더니 홀연 북문에 방을 붙였으되, 아무 날 전곡 도적한 자는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 하였거늘 감사 발군하여 그 도적을 잡으려 하더라.
차설, 길동이 도적들과 함께 전곡을 많이 도적하였으나 행여 노중에서 잡힐까 염려하여 둔갑법과 축지법을 행하여 처소에 돌아오니 날이 훤히 밝아오더라.
---pp.21~22
공이 길동을 낳기 전에 한 꿈을 꾸었다. 갑자기 우레와 벽력이 진동하며 청룡이 수염을 거꾸로 하고 공을 향하여 달려들기에, 놀라 깨니 한바탕 꿈이었다.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여 생각하기를, '내 이제 용꿈을 꾸었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으리라.' 하고, 즉시 내당으로 들어가니, 부인 유씨가 일어나 맞이하였다. 공은 기꺼이 그 고운 손을 잡고 바로 관계하고자 하였으나, 부인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상공께서는 위신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어리고 경박한 사람의 비루한 행위를 하고자 하시니, 첩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하며 말을 마치고는 손을 떨치고 나가 버렸다. 공은 몹시 무안하여 화를 참지 못하고 외당으로 나와 부인의 지혜롭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때 마침 시비 춘섬이 차를 올리기에, 그 고요한 분위기를 틈타 춘섬을 이끌고 곁방에 들어가 바로 관계하였다. 그 무렵 춘섬의 나이는 열여덟이었는데, 한번 몸을 허락한 후에는 문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타인과 접촉할 마음도 먹지 않기에, 공이 기특하게 여겨 애첩으로 삼았다.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더니 10달만에 일개 옥동자를 낳았는데, 생김새가 비범하여 실로 영웅호걸의 기상이었다. 공은 한편으로 기뻐하면서도 부인의 몸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