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카페는 여유롭고 느긋해서 누구라도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그런데 여느 관광지처럼 시끌벅적하고 어지러워진다면 내게는 더 이상 아지트가 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 여러분, 제주 카페를 찾을 때는 커피가 다소 늦게 나오더라도 재촉하지 말고, ‘누가 날 기억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큰 소리로 떠들거나 불필요한 행동은 부디 삼가 해주기를.
제주에 처음 내려왔을 때만 해도 제주 전역을 통 틀어 컵케이크를 파는 곳은 딱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 수가 조금 늘어 내가 아는 곳만 모두 네 군데. 그 중 mavinnkiki의 컵케이크가 관심을 끄는 건 그 옛날, 아빠 손에 들려오던 버터크림 케이크를 닮았기 때문이다. 케이크 위에 버터크림으로 만들어낸 한 송이 장미꽃을 보는 순간, 어릴 적 맛보던 케이크 위 딱딱한 사탕꽃장식(메린게)이 떠올랐다. 별맛도 안 나던 그 꽃이 너무 예뻐 애지중지 한참 동안 소중히 간직하곤 했던 어린 시절. 물론, 그때의 케이크에 비하면 mavinnkiki의 컵케이크는 훨씬 더 건강한 재료와 훌륭한 디자인임을 인정한다.
맨도롱또똣, 쬬코쬬코, 귤꽃소복 사르르라떼 등 궁금한 메뉴들이 가득 적힌 비뚤어진 메뉴판, 무심한 듯 놓여진 엽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듯한 싱크대, 마치 실험미술을 전시하는 갤러리처럼 카페의 모습은 헝클어지고 마음껏 자유분방하다. 그래서 처음 이곳에 들어서면 자리부터 먼저 잡고 앉게 되는 다른 카페와는 달리 한참을 서성거리게 된다. 정리되지 않은 듯한 이 공간은 어쩌면 어떤 이에게는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뽀얀 먼지가 가득한 모습에 뭐지, 싶은 마음이 울컥한다면 커피부터 주문하지 말고 잠시 카페를 둘러보길 권한다. 이 곳은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아서 재미있는 곳이고, 정리되지 않아 매력적인 곳이다.
카페의 콘셉트는 영화 달팽이 식당을 롤모델로 삼았다.
“저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저의 이미지가 해학적인 게 좋아요. 주방이 발끝까지 오픈돼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거짓없이 깨끗하게 만들어내는 요리에 대한 자신감 또한 표현하고 싶었어요. 테이블에 요리를 내놓고 손님들이 다 먹고 접시를 달그닥 달그닥 긁는 소리를 낼 때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그녀, 레이지부인은 제주의 유명인사다. 젊은 부부가 서귀포 작은 마을에 들어와 게스트하우스를 열겠다고 했을 때,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들을 만류했다. 망한다고, 누가 여기까지 찾아오겠냐고, 괜한 돈 들이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녀, 레이지부인은 나처럼 팔랑귀 마나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모두가 겁내하는 공사를 담담히 감행했고, LAZYBOX에 손님들이 찾아들게 했고, 결국에는 사계리를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싶은 동네로 만들었다. 이제 사계리 할망들 입에서 LAZY BOX라는 말은 자연스러운 일상어가 되었다. 처음, LAZY BOX라 이름 지었을 때 순수 우리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타박하던 그 할망들에게서 말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