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병원은 환자가 사망한 다음에야 비로소 환영한다. 수익성이 좋은 장례식장으로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장례식장은 어딜 가나 화려하게 꾸며놓았지만 돌아가신 분만 갈 수 있다. 아무리 말기 환자의 사정이 급해서 입원이 필요해도 장례식장에 미리 입원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 p.14
가능하다면 환자에게 빨리 알릴 필요가 있다. 삶을 다시 펼쳐보며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조명하고 마지막까지 의미 있는 삶을 완성하는 시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너무 늦게 알려서 그들의 인생을 완성할 시간을 빼앗는다면 엄중한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p.70
의사라 하더라도 죽음을 공부하지 않고는 죽음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철학이 정리 되지 않고는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하고 희망을 갖고 있지 않고는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의사들 스스로도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삶의 마무리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확립할 필요가 있다. --- p.84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명백히 사망단계로 진입한 환자에 대해서도 검사와 치료를 계속하는 경우가 있다. 설사 이런 의료 행위가 아무런 이득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 p.171
지난 대선 유세 때 박근혜 대통령조차도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중병에 걸리면 가정 경제가 무너지고,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연설했을 정도다. 중병에 걸리면 서민들은 약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치료를 포기한 채 죽어가야만 한다. 더 이상 돈 때문에 병원에 못가거나 가정 경제가 무너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 pp.214-215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나와 있다. 모든 말기 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한 죽음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인간답게 죽을 권리야말로 우리가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마지막 기본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