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보편적인 인간 현상으로 어느 공동체나 체험하는 사자(死者)와의 완전한 단절을 말한다. 그런데 이 동일한 사건에 대한 해석은 예로부터 다양해서 죽음관에 따라 문화권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각 공동체의 세계관이 이 안에 집약되고 있다. 생명(生命)의 소멸인 죽음은 삶과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공동체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따라서 각기의 종교 전통이 죽음에 대해 어떤 해석을 하고 있는지를 고찰하는 일은 삶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을 확인하는 하나의 지름길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종교학회는 ‘죽음의 문제’를 연구과제로 택하고, 현존하는 세계 종교 전통들과 한국의 대표적 대중 신앙에서 발견되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고찰하였다. 요사이 한국인의 평균 연령이 많아지고 노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는 죽음을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연장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에게 깊은 의미를 지닌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인류 역사 시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종교 전통들이 제시한 해석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가장 풍부하고 다각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인간 사고의 보고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관(五官)을 통한 체험에 기초를 둔 일반적 추리가 멈추는 곳, 그렇기에 인간 이성에는 가장 어둡고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인류 공동체는 각기 제 나름대로의 괴로운 지적(知的) 씨름을 하였다. 이 씨름의 최초의 단면을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 페르시아의 심판사상 및 고대 중국인의 조상신사상에서 살펴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해석을 문자(文字)를 통해 기록으로 남긴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죽음을 실질적으로 삶의 끝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죽음 후의 세계를 아랄루(Arallu-메소포타미아어 : 히브리어로는 She'ol)라고 불렀는데, 먼지를 먹는 어두운 지하 세계, 모든 기쁨이 사라진 그림자의 나라라고 생각하였다. 신(神)이 인간에게 부여한 운명인 죽음에 도전을 시도한 길가메시(Gilgamesh)는 힘겨운 여행 끝에 생명의 신비가 잠겨 있는 바다로부터 불로초(不老草)를 따오는데 성공하였지만, 결국은 그것마저 뱀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이 서사시의 끝은 길가메시 역시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평범한 사실보다도 운명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체득된 지혜가 그의 삶을 그만큼 풍부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죽음을 신(神)들이 결정한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했지만, 그런 인간의 한계성 인식이 현존재를 무의미하게 하기보다는 더 지혜롭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