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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샤 꽃나무 아래에 앉아서(개정판) 외전
eBook

엘샤 꽃나무 아래에 앉아서(개정판) 외전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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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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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0.83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3.8만자, 약 4.5만 단어, A4 약 87쪽?
ISBN13 979115682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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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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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흠. 꽃이 엄청나게 피었네.”
때는 봄. 커다란 엘샤 꽃나무가 있는 덕분에 황실에서 나들이를 할 때 자주 쓰는 셀미르 별궁의 정원은 몹시 아름다웠다. 인기척이 없는지라 마음 놓고 정원 안을 걷던 라인트는 곧 나무 아래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숨을 죽였다.
옅은 연분홍색의 천을 겹겹이 겹쳐 만든 예복에 작은 구슬장식을 머리에 찰랑찰랑하게 달고 있는 커다란 인형이 있었다. 머리카락은 본 적이 없는 연분홍색. 게다가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엄청나게 길었다.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모습에 저것이 정말 사람인지, 아니면 정령이나 요정이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한동안 계속 가만히 서 있던 라인트는 조심스럽게 나무 근처로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사람이 맞긴 했다. 한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손도 발도 작고 앙증맞아서 굉장히 귀여웠고 피부도 뽀얀 느낌이라 한번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신기한 느낌에 좀 더 가까이 걸어가서 쳐다보았다.
작은 숨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이는 잠을 자고 있었다. 푸욱 잠들어서 미동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은 것이었다. 꼭 감긴 두 눈의 색이 궁금해져서 라인트는 아이를 깨울까 잠시 고민했다.
‘정말 예쁘다. 내가 별로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 봤어. 어느 나라에서 온 아이지? 내가 알기로 제국의 유력 귀족 중 이런 색의 머리를 가진 아이는 없는데…….’
라인트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아이는 잠이 깨는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감긴 두 눈을 떴다.
“우웅, 하암.”
“우와.”
아이의 눈을 보고 라인트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먹고 그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머리카락과 맞춘 듯 눈의 색은 연보라색이었다. 그것도 진주가루가 섞인 듯 아름답게 빛나는 연보라색. 햇빛에 비춰져 반짝거리는 눈이 너무 아름다워서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누구십니까?”
눈을 한, 두 번 깜박거리고 나서 아이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라인트가 누구인지 아주 정중하게 물었다. 열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데 말투는 꼭 산전수전 다 겪은 외교관 같았다. 라인트는 생각보다 더 정중한 아이의 말투에 놀라며 대답했다.
“내 이름은 라인트 하레즈 에크리스. 레이디의 이름은 뭔가요?”
여자아이인 줄 알고 라인트는 아주 예의 바르게 자신의 소개를 한 뒤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맘에 아주 쏙 들었다. 이제껏 봐왔던 어떤 영애들도 이 나무 아래의 아이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찬란한 미모였다. 미래가 무척 기대되는.
하지만 이런 라인트의 생각은 곧 산산조각 부서졌다. 바로 아이의 대답 때문이었다.
“제 이름은 엘루시안 휘엔 디피스입니다. 에크리스라는 성을 보아하니 공작가의 자제분이시군요.”
방글방글 웃으면서 하는 목소리는 예쁘고 듣기 좋으며 평안했지만 내용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엘루시안 휘엔 디피스?”
“네. 으음, 보통 휘엔 대공이라고 줄여서 부릅니다만. 이름이 너무 길어서 불편하거든요.”
“그럼 남자? 게다가 나랑 동갑?”
“예, 나이도 동갑이 맞습니다. 제가 들은 말이 확실하다면. 황제 폐하께서 그러셨거든요.”
자신이 지금 대단한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라인트는 경악했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었다. 저렇게 작고 예쁘고 인형같이 생긴 여자아이가 자신과 동갑에 대공이란 신분에 무려 남자! 라니.
“말도 안 돼. 저 얼굴에 저 몸집이면서 나랑 동갑에 같은 성별이라니……. 신은 도대체 무슨 실수를 하신 거야?”
머리를 부여잡고 조용히 좌절하는 라인트의 모습에 휘엔 대공, 가족들에게는 엘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가 아장아장 걸어서 다가갔다.
“저 괜찮으신가요? 어디가 아프신가요? 의사라도 불러올까요?”
“아, 아니, 괜찮습니다.”
곧 이성을 찾은 그가 자신이 이제까지 한 실수들을 깨닫고는 곧 얼굴이 빨개져 사과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디피스 공국의 대공 전하이신 줄 몰랐습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괜찮아요. 제국에 오고 나서부터 절 대공이라고 바로 알아챈 사람은 황제 폐하밖에 없으세요. 일단 키가 작다 보니…… 전 병 때문에 억지로 성장을 멈춘 상태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거의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아요.”
라인트는 키보다는 얼굴에 문제가 더 많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잔뜩 무례를 저질러버린 판에 더 이상 실례되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움직이고 있는데도 여전히 빚어놓은 도자기 인형 같은 느낌이 드는 어린 대공은 웃으면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금 피곤해 보이시는데 저쪽에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지 않을래요? 마가렛이 끓여준 차는 아주 맛있어요.”
자신에게 내밀어진 작고 하얀 손을 쳐다본 라인트는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어 그 손을 덥석 잡았다. 사실 라인트 정도 되는 신분이면 이런 티타임은 정식으로 요청이 들어와야 한번 가질까 말까 하였지만 이 작은 대공에게선 사심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냥 단순히 옆집 친구를 초대하는 듯 자연스러운 느낌이라 그는 자신도 모르게 평소에 가지고 있던 경계심을 풀어버렸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걷는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동갑이라고 들었지만 도저히 그렇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이 본 보통의 열 살 아이들보다 약간 더 작아서 정말 아이 같았다.
행동을 보면 신분에 맞게 행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일단은 외모가 너무…… 신분이나 성별과는 따로 놀았다. 한번 안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꾹 억누르며 라인트는 계속 손을 잡고 별궁에 있는 테라스 쪽으로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손 안에 있는 작은 손이 생각보다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다.
‘체온이 낮은 편인가?’
보통 어린아이들은 체온이 높으니까 당연히 어려보이는 대공도 따뜻한 손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라인트는 차가운 손에 의아함을 느끼다가 아까 전에 들은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이 작고 예쁜 아이가 희귀병에 걸려서 치료를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왜 바깥에서 자고 계셨나요?”
“꽃구경을 하려고 나왔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린 거랍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잠이 쏟아지더군요. 후움, 아마 지금쯤 별궁 안은 난리가 났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랑 같이 정원을 산책했다고 말 좀 맞춰주실래요?”
자신을 올려다보면서 하는 말에 순간적으로 라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한 저 미소에는 왠지 거역할 수가 없었다.
사이좋게 손을 잡고 별궁으로 돌아간 둘은 벼르고 있던 시녀와 전의에게 실컷 혼이 났다. 라인트 또한 아픈 사람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는 죄로 전의에게 야단을 맞아야 했다.
전의는 그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대공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는데 겉으로는 별로 티가 안 나지만 내부에서 거대한 마나가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 상태라 조금만 무리해도 금방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래 견뎌야 고작 4년을 더 살 수 있다는 말에 라인트는 굉장히 슬퍼졌다. 저렇게 예쁜 미소를 가지고 있는데……. 겨우 4년을 더 살 수 있다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사실을 안 소년은, 마음이 쓰라리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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