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엄마』로 수많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신 최문정(본명 유경) 작가는 1976년 12월 31일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과학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의 다른 작품으로는 일본인들이 태양신으로 모시고 있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가 한국 여성이었다는 도발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인 팩션소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전2권)가 있다. 또한 최근에는 지치지 않고 사랑을 위해 전쟁을 한 세기(世紀)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사랑, 닿지 못해 절망하고 다 주지 못해 안타까운』(21세기북스, 2011. 6.)을 펴냈다. 곧 『바보엄마』의 개정증보판(영주의 이야기)과 함께 2부 속편(닻별의 이야기)을 펴낼 예정이다.
“아버지가 다 알아. 다 아니까 괜찮아. 그만 울고, 밥 먹자.” 그 몇 마디에도 수민은 아버지가 자신의 편이라는 생각에 든든했고,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확신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한숨에 뭔가 잘못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수민은 자신의 눈물이 아버지가 한숨을 쉬는 이유라 생각했다. 그래서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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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은 아버지를, 아버지는 수민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서로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그들이 이해한 유일한 점이었다. 그나마 수민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아버지는 수민을 사랑한다고 아직 착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해할 수도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쁜 감정은, 서운한 기억은 쌓이기만 할 뿐 날아가지 않는다. 수민과 아버지 사이에 쌓인 오랜 감정은 이제 단단한 벽이 되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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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라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지. 내가 부모 노릇을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두려워 수민이가 잘못하면 더 야단을 쳤어. 첫아이라 기대감도 컸지. 그래서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더 많았어. 이래라저래라 항상 명령만 하고,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야단만 쳤어. 그 때문에 부녀 사이가 멀어진다 해도 바르게 키울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게 다 헛짓이었네. 허탈하더라.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아서 바로잡을 수 있으니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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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아이들과 시간을 못 보낸 게 가장 미안해. 다행히 초중고 검정고시는 결혼 전에 치렀지만, 야간대학 입시에 대학원, 사관후보생 전형 준비까지 늘 바쁜 아버지였지.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고 짜증날 때면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거라고 맘을 다잡았어. 대학도 제대로 졸업 못한 못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고, 잘난 장교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다고… 그렇게 날 채찍질했어. 그런데 요즘 들어 내가 잘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계급이 높은 아버지보다는 항상 곁에 있어주는 아버지가 더 좋지 않았을까 가끔 후회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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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하고 싶었어. 난 이런 계급장 따위 필요 없다고, 별이 몇 개든 중요하지 않다고. 나한테는 수민이가 별이니까. 그 별은 얼마나 밝은지 다른 별은 보이지도 않게 만드니까. 그 별은 어찌나 큰지 다른 별은 다 가려버리니까. 그 별은 단 하나지만 충분히 내 인생을 밝고 환하게 비추니까. 그러니까 다른 별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어.
주인공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 수민. 수민은 재벌 3세의 구애를 받아들여 그와 결혼하지만 결혼한 뒤부터 생활은 엉망이 된다. 수민이 청혼을 받아들인 것은 아버지와 다르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군인인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 한국에도 잘 오지 않는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발레리나가 된 뒤 더더욱 아버지와 소원한 관계지만, 예고 입시날에 늦둥이 아들을 낳다가 어머니가 죽는 일로 부녀간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거의 의절하다시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 이혼 과정을 통해서 수민은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다. 반대하는 결혼으로 인한 상처와 출산 등으로 수민은 자포자기 상태가 되고, 아버지는 그런 딸에게 다가서며 그동안 쌓인 상처를 위로한다. 수민은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가면서 다시 재기하기로 마음먹는다. 수민은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를 위한 발레공연을 준비하면서, 아버지의 깊고 넓은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가 죽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글에는 부성애는 물론 부부애가 짙게 묻어나 읽은 내내 진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