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9월 19일 함경남도 단천에서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문단에 등장한 것은 1932년 ≪중앙일보≫ 현상모집에 희곡 <중국은 어디로>가 1등에 당선하면서부터다. 같은 해 3월 ≪동광≫ 지가 주최한 학생문예공모에서 시 <거리에서 들려주는 노래>가 3등으로, 4월에 <새 그릇에 담은 노래>가 1등으로 입선한다. 이후 ≪동광≫, ≪신동아≫, ≪조선일보≫ 등에 시와 단편소설 들을 발표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미국 문학에 심취한 그는 일제 말기에 미국 문학과 토머스 울프에 관한 에세이를 발표하기도 하고,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을 번역하기도 한다. 더불어 1949년 ≪햄릿≫을 번역한 ≪하므렡≫을 출간하는데 이는 ≪햄릿≫의 최초 번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방 이후 적극적인 정치 행보와 문단 활동에 나선다. 미 군정청에서 공보처 여론국장에 취임하는 한편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한다. 1947년 여론국장에서 입법의원 부비서장으로 전출되지만 8월에 사임한다. 미 군정청의 관리로 지내면서 미국에 의한 신탁통치가 민족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낙담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실천적 문학가로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인다. 1946년 장편소설 ≪청춘≫과 단편소설 <프란씨쓰 두셋>을 신문에 연재하고, 1948년에 단편소설 <척사 제조자>, <한 화가의 최후>를 발표하고 장편소설 ≪해방≫을 연재하기도 한다.
1948년에 ≪서울타임스≫의 주필 겸 편집국장이 되지만 곧 사임한다. 1949년에 체포령이 내려지자 보도연맹에 가입하고 그 기관지인 ≪애국자≫에 반공시를 발표하기도 한다. 1950년 인민군에 의해 서울이 함락되자 인민군에 자원입대해 월북한다. 그러나 그해 12월 심장 발작을 일으켜 북한에 있는 헝가리 지원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이때 병원의 정경을 묘사한 장시를 탈고했다고 하는데, 이 원고는 헝가리의 종군기자인 티보 머레이에게 전해져 ≪우정의 서사시≫라는 제목으로 부다페스트에서 출판된다.
1951년 7월 휴전회담 때 인민군 대표단의 통역관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후에는 더 이상 공식 석상에서 그를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는 1953년 3월부터 불기 시작한 남로당계의 숙청 바람에 휘말린다. 그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음모와 반국가적 간첩 테러 및 선정선동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결국 사형과 전 재산 몰수가 언도된다. 함께 선고를 언도받은 인물은 임화, 이승엽, 조일명 등이었는데, 설정식은 임화와 함께 1953년에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편자 : 차선일
차선일은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태원 문학의 미적 자율성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학하며 근대 탐정소설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고급문학과 저급문학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능력 밖의 연구에 몰두하며 애를 먹고 있다. 이후로 문학의 범위를 벗어나 철학과 사회학 등 인문학 담론을 공부하면서 문학 연구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재는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에서 민속학과 근대문학의 연결점을 찾는 골치 아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