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알면 멀어도 갈 수 있지만, 길을 모르면 갈 수 없다! 하나님의 법과 식과 길을 모르면 인생과 세상을 잘 살 수 없다.
운전을 하려면 운전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운전하는 법을 모르면 운전을 할 수 없고, 법을 모르고 운전을 하면 위험할 수 있다. 원하는 곳에 가려면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알아야 한다.
인생과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법(法)이 있고, 식(式)이 있고, 길(路)이 있다. 그 법과 식과 길을 알면 인생과 세상이 쉬어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생과 세상이 꼬이기 시작한다.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 법과 식과 길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법과 식과 길은 우리 인생과 세상을 만드시고 창조하신 분이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고, 율법인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법이고 뜻이고 식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삶의 법을 찾아야 한다. 식을 찾아야 한다. 길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삶의 법을 찾을 수 있고, 식을 찾을 수 있고, 길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 아끼시는 것이 없으시다. 우리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시는 것일까? 목사만 아니었으면 그냥 죽고 싶었을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한 한달쯤 방구석에 처박혀 정말 두문불출하고 있었을 때 벽에 걸린 작은 나무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그 첫 마디를 잊을 수 없다. “나는 너 죽는 꼴 못 봐.”
가난은 우리를 참 아프게 한다. 우리는 가난을 아파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가난과 싸운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별로 아파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싸우려 하지 않는다. 죄가 아파야 한다. 죄가 늘 불편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질 칠 수 있어야 한다.
살다보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되리만큼 인생의 사면초가를 만날 때가 있다. 사탄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를 시험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식과 법을 거부함’이다. 하나님의 뜻과 식과 법과 다른 식과 법을 제시함으로 사탄 자신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곳으로 하나님이, 성령님이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주시고 싶어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세상, 그 중에서도 아주 작은 몇 가지를 목숨 걸고 구하며 산다.
하나님의 율법은 나에게 두 가지 복을 주었다. 지킴으로 복을 받고 지키지 못하여 절망함으로 소망을 나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게 하는 복을 받았다.
운전하다보면 가끔 방향감각이 뒤집힐 때가 있다. 오른쪽이 서울인 것 같은데 왼쪽이 서울이라고 써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언제나 나를 부인하고 표지판대로 운전을 한다. 나는 표지판을 신뢰한다. 표지판대로 운전하면 언제나 바른 목적지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