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노인이 멈칫했다. 그리고 눈을 크게 키우는가 싶더니 여권을 자세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남조선 사람인가?” 한국말이 들려오자 예상치 못한 찬혁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특별할 건 없었다. 흑룡강성은 연길을 제외하고 가장 교포가 많은 지역인 탓이다. 여권을 회수한 찬혁은 이내 마음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대꾸했다. “보시는 대로요.” “마을에 손님이 왔다더니 당신이었나 보군.” 말투는 한결 부드러워졌지만 경계를 완전히 풀진 않았다. 찬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그런데 저에게 뭐라고 소리치셨습니까?” “돌아가라고.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니니까.” “이 동굴이 특별한 곳입니까?” 찬혁이 묻자 노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특별하다면 특별하겠지. 당신 눈에는 관광지로 보일지 몰라도 여긴 무덤이야. 당신이 모를 역사에 희생된 분들의 무덤.” “제가 잘 찾아온 거 같습니다.” “뭐라고?” 노인이 귀를 쫑긋거리며 물었지만 찬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의복을 가다듬었다. 탁탁. 먼지를 가볍게 털어 내 옷을 정돈한 찬혁은 크게 두 번 절을 올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이 뭐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절을 올리는 찬혁의 모습이 숭고하게 보일 정도로 엄숙했던 것이다. 절을 마친 찬혁이 동굴을 다시 바라보자 노인은 그제야 물어 왔다. “당신, 여기가 어딘지 알고 절하는 건가?” “러시아로 향하던 대한독립군단의 척후병들이 머물렀던 동굴입니다. 그리고 한 개새끼의 배신으로 몰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찬혁의 이야기가 정확했는지 노인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당, 당신, 도대체 누구야?” 당혹감이 가득한 그의 질문에 찬혁은 먹먹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당시 암살당한 그분들 중에 제 조부가 계십니다.” “이럴…… 수가.” 터덕.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뒷걸음질 쳤다. 손발이 떨리는 것도 모르는지 찬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경악만이 가득했다. 그제야 찬혁은 천천히 동굴에서 시선을 떼고 경악에 찬 노인을 바라봤다. “이곳을 지켜 주신 분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