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전공하고 IT회사에 취직했지만, 회사원으로만 살기에는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컸다. 네이버 웹소설 [바람의 노래]를 연재하며 독자들을 만났고, 이후 춘향전을 모티프로 한 역사 로맨스 《백설춘향전》으로 2013년 제8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봄 그리고 겨울'이라는 제목으로 당선된 이 작품은 봄 향기(춘향)와 흰 눈(백설공주)을 닮은 여인을 주인공으로 세워, 춘향전이라는 전통적 소재와 백설공주라는 북유럽 구전 동화를 궁중 비화로 재해석해 참신한 역사 로맨스로 재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최 언제부터 그 어둠 속에 계셨습니까?” 쏟아지는 빗물처럼 춘향이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말이 몽룡의 귓가를 적셨다. 툇마루 아래로 온 몽룡은 대답 없이 춘향을 끌어 자신의 가슴에 안았다. 차갑게 식은 몽룡의 몸이 춘향에게 닿았다. 그러나 춘향은 얼굴이 화끈해져 몽룡의 몸이 차가운지도 몰랐다. “몸이 다 식었습니다. 언제부터 계셨는지 물었습니다.” “내 마음은 이곳에 육일 전부터 있었느니라.” 몽룡의 말에 춘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 p.43
장옥정은 침소에 열린 창으로 떨어지는 달빛을 보았다. 그러곤 달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달아, 달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우냐?” 달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있었던 장옥정의 버릇이었다. 누가 봐도 혼잣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스스로는 이 버릇을 혼잣말이라 생각지 않았다. 옥정이 달을 보며 물을 때마다 달빛이 자신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당신입니다”라고 대답해주는 것만 같았다. --- p.17
춘향의 의식이 깨어났다. 마지막 기억이 끊긴 뒤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 닫혀 있는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춘향은 그들을 바라보고 놀라 기겁을 하였다. ‘이곳은 동자 귀신들의 소굴인가, 난쟁이가 곡예하는 유랑단인가?’ 일곱 명의 난쟁이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 p.173
춘향이 여럿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소식이 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왕은 그녀의 행실이 흡족하고 대견했다. 그리고 자신이 데려온 변학도와 춘향이 궁 내외에서 조선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 왕은 악몽의 긴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 p.313
왕은 말이 다 끝나기 전에 그녀를 끌어안았다. 춘향이 들고 있던 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왕의 귀와 그녀의 귀가 서로 닿았다. 소리를 들으라고 달려 있는 귓바퀴가 본래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상관없다는 듯이 서로의 온도를 느끼고만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누구나 넘나드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네가 무엇이었든 이제 상관없다, 최씨야.” 춘향은 문득 전화인의 열녀문 앞에서 떠올랐던 ‘보통의 마음’이라는 말이 기억났다. 그리고 곁에서 느껴지는 왕의 온도, 아니, 한 남자의 온기에 춘향의 마음속 빗장도 이제 모두 풀어져버렸다. --- p.335
변학도의 손엔 사과 한 알이 들려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남원에서 가지고 올라온 사과입니다.” "고향에서 온 사과라…" 춘향이 사과를 받는 것을 보고 변학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