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늦둥이를 위한 친절한 야구 입문서
컨텐츠팀 - 백영호(baekyoungho@yes24.com)
2009-09-30
"아, 투수 김○○. 오늘 투심 패스트볼 구위 좋은데요? 닥터 K로 불리는 별명에 걸맞네요. 이렇게 경기하면 오늘 노히트노런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김○○ 투수 올해 방어율이 굉장합니다. 평균 자책점이 정말 적구요. 내년에 FA 자격을 얻게 되는데, 올해의 피칭이 연봉에 많이 반영될 것 같군요. 말씀드리는 순간 스트라이크 이번엔 타자 몸쪽에 붙는 포크볼이군요. 이야, 배터리의 콤비네이션도 최상인 것 같습니다."
투심 패스트볼, 닥터 K, 노히트노런, FA. 어찌 이렇게 쉬운 말이 없는지, 야구라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해석되지 않는 외국어 지문과 같은 말일 것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TV뉴스, 신문기사의 스포츠 관련 소식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야구란 스포츠. 생각해보면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의외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스포츠가 아닐까 싶다. 용어의 장벽, 준비물의 장벽, 소요되는 시간의 장벽, 스탯이라 부르는 통계의 장벽 등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물론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하나가 즐거운 요소들이 되겠지만 말이다.
『야구 아는 여자』, 이 책은 야구라는 스포츠에 관해서 최소한의 상식들을 알기 쉽게 이야기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기자가 되어 야구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아무 것도 모르고 두시즌 동안 여러 선배들을 고생시키면서 좌충우돌하다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타석에 서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세 번의 공정한 기회,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승리를 이끌어낼 수 없으므로 서로 돕고 도와야 한다는 점, 수많은 전략과 두뇌싸움 속에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결과를 알 수 없어 인생과 닮은 점이 야구의 매력이자, 많은 이들이 야구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야구 늦둥이를 위한 기본적인 야구상식으로 시작해서 한국 프로야구 8개 구단의 특성과 각 팀의 감독들과 스타플레이어들, 야구장에서 만날 수 있는 명물들 이야기를 싣고 있으며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들도 알려주고 있다. 야구장에 방문할 때의 상식과 야구의 법칙, 프로야구의 라이벌, 마니아만이 구사할 수 있는 야구와 관련된 대화를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전해주고 있다. "여자의, 여자를 위한, 여자에 의한 스포츠 '까막눈' 극복 프로젝트"라는 뒷표지의 문구에 어울리는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책이다.
"한때" 야구를 좋아했었고, 잘은 못하지만 야구 게임을 가끔씩 하는 사람으로서 야구에 관해서는 아주 문외한은 아니다. 용어의 의미들이나 야구 규칙에 대해서도 무리가 없는 정도로는 알고 있다. 내가 야구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다지 즐기지 않게 된 이유는 2, 3시간을 잡아 먹는 경기 시간, 야구를 실제로 하려고 하면 장비나 준비물들이 꽤 많이 필요하다는 점, 내가 자란 고장을 연고지로 하는 팀이 없었다는 점 등이다.
그래서 국내 프로야구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바다 건너 메이저리그에서 들려오는 입이 떡 벌어지는 기록들이나, 세계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었던 WBC나 올림픽 야구 등의 국가대항전에만 관심이 있었던 나날이었다. 뉴욕 양키스에서 뛰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3루수인건 알아도, 2익수 또는 고제트로 불린다는 고영민 선수가 포지션이 뭔지도 몰랐고 랜디 존슨이라는 선수의 강속구는 알아도 오승환 선수의 돌직구는 몰랐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 프로야구에 관한 알찬 상식들을 얻을 수 있었고 야구 경기를 통해 감동을 받았던 기억들이 『야구 아는 여자』의 곳곳에 배어 있기도 했다. 출신은 경남이지만 희한하게도 해태 타이거즈(현재 기아 타이거즈의 전신)를 좋아해서 선동열 선수, 한대화 선수, 김성한 선수, 조계현 선수 등의 동작 하나하나를 보며 몸을 움찔움찔 했던 일과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팀에게 2점 홈런을 뽑아낸 후 두팔을 곧게 뻗고 멋지게 달려가던 이승엽 선수의 뒷모습, 베이징 올림픽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빛났던 류현진 선수의 투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나는 야구를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다. 단지 관심이 아주 많이 줄어 야구와 내가 벌어진 폭이 넓어서 접근을 시도하지 않았었던 것이었다. 『야구 아는 여자』, 내게 야구에 대한 관심의 꺼져 있던 불을 다시 살려주었구나. 마침, 지금은 프로야구의 가을잔치 포스트 시즌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어제 이 책을 다 읽고 텔레비전을 켜니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가 방송되고 있었다. 이전 같으면 바로 채널 변경인데, 어제는 채널고정. 7회부터 보기 시작해서 광고 본 후 감독 인터뷰까지 다 보았다. 책 하나 읽었다고 이리 달라질 수 있다니.
잘 되었다. 야구에 대한 관심의 불을 지펴준 이 책 하나만 있으면 프로야구 가을잔치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 등의 통로를 통해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빠르고 쉬운 야구 상식 가이드가 있으니 마음이 어느 정도 든든하다. 포스트 시즌에 경기를 가지는 네 팀의 특성에 대해 쓴 부분을 되짚어 읽으면서 내가 응원할 팀을 골라볼 수도 있겠고, 지금 경기에 뛰는 그 선수의 이름과 별명, 특기 등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겠다. 요거, 요거, 요거, 좋다. 괜찮다.
야구 시즌만 되면 직장 동료와의 점심 자리가 불편한 여성을 위한 취향공감서로, 주위의 야구광들로부터 뭔가 소외당하는 기분을 느껴본 여성을 위한 야구 입문서를 표방하는 『야구 아는 여자』. 야구에 대해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쉽다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야구에 관한 에피타이저로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루어질 수 있는 소망인지 모르겠지만 바다 건너 메이저리그 이야기도 다루는 『야구 아는 여자 해외편』도 은근히 기대되고, 프로야구의 각 시즌의 변화를 반영한 『야구 아는 여자 2010년』등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아, 오늘 롯데와 두산의 경기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갈매기와 곰의 대결 『야구 아는 여자』를 옆에 끼고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