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에 걸쳐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바보엄마』 ①권 ‘영주 이야기’는 드라마(SBS-TV 주말드라마)로도 방영되어 수많은 독자를 울린 바 있다. 최문정 작가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발레리나 딸과 군인 아버지의 오래된 갈등과 뜨거운 화해를 그린 신작소설 『아빠의 별』(드라마화 예정)이 있다. 최근에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전2권)를 개정한 『태양의 여신』(전2권)을 다시 펴내기도 했다. 에세이로는 지치지 않고 사랑을 위해 전쟁을 한 세기(世紀)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 닿지 못해 절망하고 다 주지 못해 안타까운』(21세기북스)을 펴냈다. 최문정 작가는 1976년 12월 31일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과학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엄마, 죽지 마. 날 내버려두고 혼자 가지 마.” “도, 도대체 어, 어떻게… 도대체 왜? 왜 이제껏 말을 안 했어? 도대체 왜!” “아빠 싫어! 아빠 미워! 아빠 나빠!” 엄마는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택은 이미 끝났다. 더 이상은 엄마의 불행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결코 행복한 가족일 수 없었다. 희생을 한 그 누군가는 이미 불행하니까.
“아니. 비슷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더라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려면 그 사람과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나와 완벽하게 반대인 이모에게 빠져버렸다. 어떤 사람과 친밀해지려면 그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모는 단 하루 만에 나와 가까워졌다. 인간관계란 논리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바탕 위에서 더 견고하게 이루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주 쉽게 잊어버린다. 그런데 왜 그날 밤의 일은 잊어버리지 못하는 걸까? 아무리 숨차게 도망쳐도 그날 밤은 나보다 앞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악몽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기억은 내가 잊고 있던 사실을 자꾸 되살렸다. 며칠 더 지나면 남자의 얼굴도 기억날 것 같았다. 꿈속에서 남자의 얼굴을 보게 될까봐 두려웠다. 남자의 얼굴을 보면 그 얼굴이 매일 내 곁을 따라다닐 것만 같았다. 점점 더 잠들기가 무서웠다.
부모의 이혼이 싫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엄마와 살거나 아빠와 살아야만 하니까. 내 인생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은 나라는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뭔가가 끼어드는 게 싫었다. 그리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보는 게 힘들어지는 상황도 꺼려졌다. 매일 볼 수 없는 게 아니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항상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꿈을 꿨어.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의 편이 돼줄 수 있는 가족을 가지고 싶었어. 네 말이 맞았어. 그 꿈에 내가 너무 집착했었나봐. 이룰 수 없는 꿈은 악몽일 뿐인데. 그 꿈이 이렇게 나를 옥죌 줄은 상상도 못했어.” 영주에게 가족이 돼주고 싶었다. 그게 내 유일한 꿈이었다. 하지만 영주의 말대로 이룰 수 없는 꿈은 악몽일 뿐이다. 더 이상 영주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도…, 영주의 가족이 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