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아예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라는 듯 생쥐를 테이블 앞 의자에 앉혔다. 샹들리에 빛을 받아 발그레하게 흔들리는 푸딩 그릇과 초콜릿이 흠뻑 내려앉은 에클레르 접시 사이에서 연녹색 눈동자가 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춤춰야 하는데요.” 많이 먹어 배가 나오면 보기 싫을 거라 그랬다.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시선에 황제가 대꾸했다. “춤출 생각 없다.” “하지만, 연습도 했습니다.” “정 추고 싶다면 신발부터 갈아 신어.” 생쥐는 드레스 자락 아래로 살짝 내비치는 진주장식 구두를 바라보았다. “황녀가 선물한 겁니다.” “안다.” “이거 안 신으면 지는 거라고 했어요.” 황제의 한쪽 눈썹이 슬쩍 치켜 올라갔다. “그런 거 신경 안 쓰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은 신경 안 씁니다. 하지만 황녀는 싫어요. 이렇게라도 반항하고 싶습니다. 이 신발 신고 춤도 춰 보일 겁니다.” 아리에스가 맞는 것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았음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직접적인 보복은 못 한다 해도 이런 사소한 것에서라도 지고 싶지 않았다. 무심코 두 주먹을 질끈 쥐는 생쥐를 내려다보던 황제가 그녀를 향해 몸을 숙이며 말했다. “무도회를 포기한다면 황녀의 속을 긁어 놓을 수 있게 해 주마.” 생쥐가 냉큼 고개를 꺾어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진짜요?” “그래.” 생쥐는 잠시 제 마음속 저울을 이리저리 재었다. 황녀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굳이 발 아프고 위태로운 구두를 신고 춤을 출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아예 춤추는 거 자체를 포기하기엔 칭찬을 들으며 연습한 것이 아쉬웠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녀는 결국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네. 춤 안 추겠습니다.” 그러고는 반질반질 눈에 윤을 내었다. 황제는 생쥐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더 먹인 뒤에 다시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을 대하듯 생쥐를 품에 넣고서 그가 향한 곳은 입담 좋은 부인네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크게 열린 창가에 모여 수군덕거리던 귀부인들이 황제의 접근을 눈치채고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전에 없던 일인지라 그녀들의 눈빛에 반짝 열기가 어렸다. “내 작은 나비를 그대들과 인사시켜 주고 싶군.” 수줍음 많은 어린 부인을 위해 체면 불구하고 직접 여인네들 사이에 끼어드는 팔불출 남편 같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