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강혁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만남의 장소에 있어 곤란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밖에서 만나자니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아직은 영화 개봉 전이라 그의 얼굴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워낙 생김새 자체가 눈에 띄다 보니 시선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러다 혹시 이쪽 계통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이만저만 난처한 게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만남의 장소는 그의 집이 되었고, 오늘이 그날 이후 세 번째 만남이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싫다면서 왜 이러고 있을까. 행여 다른 사람이 해코지 당할까 봐 그게 무서워서?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핑계라는 걸 아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꾸 이러면 죽어 버린다고 협박하면 되지 않나? 굳이 그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어떤 질문에도 답을 낼 수 없었다. 제 마음을 저도 알 수가 없었다. 도강혁은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다. 그런데 눈이 간다. 이건 대체 무슨 경우야.
그와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실은 즐기고 있는 건가. 잘생긴 스타 작가가 저한테 목맨다는 사실이 짜릿한 걸까. 누군가 확실한 제 편이 있다는 게 안심이 되는 걸까. 그도 아니면 그가 불쌍한 건가. 거울을 보는 것 같아 외면할 수가 없는 걸까. 정말 싫은데, 저처럼 어둡고 칙칙한 사람은 정말 싫은데, 도통 제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그의 집 앞이었다. 이나는 벨을 눌렀다.
“윤이나예요.”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은 성난 얼굴을 한 그가 있었다.
“일이 좀 많았어요. 못 올 뻔했는데 온 거니까 인상 펴요. 보통의 연인들도 이틀에 한 번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그녀가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사무적으로 하루 일과를 보고했다.
“점심은 대충 김밥으로 때웠어요. 오늘은 외출한 적 없었고 사무실에만 있었고…….”
앞선 두 번의 만남이 다 이런 식이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뭘 먹었는지 그가 묻기 전에 말을 했다. 그를 항상 경계하며 거리를 두었다. 진지한 대화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알아 간다는 게 겁이 났다. 감당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어두운 삶을 살아왔는데 더 어두운 음지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뭐 또 궁금한 거 있어요?”
“기계처럼 똑같은 말을 하는군.”
“말할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원래 이런 식인가?”
“뭐가 말이죠?”
“남자 대할 때.”
“아마 그럴 거예요.”
“침대에서는.”
이나가 멈칫했다. 강혁은 여유 있게 말을 이었다.
“침대에서도 그런가?”
로봇처럼 내내 똑같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이나의 얼굴에 모처럼 다른 표정이 걸렸다.
“왜 말이 없어? 곧잘 받아치더니.”
“궁금해요?”
“당연하잖아.”
“역시 당신도 어쩔 수 없잖아. 결국은 자 보고 싶은 거잖아.”
가까이 다가온 그가 으르렁거렸다. 눈빛이 변해 있었다.
“날 먼저 자극한 건 너야. 난 윤이나를 알고 싶었던 거지, 로봇을 상대하고 싶었던 게 아냐. 이럴 거였으면 애초 네 조건 따위 받아들이지도 않았어.”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끌어당긴 그가 고개를 숙였다.
“궁금해. 침대 위에서도 이렇게 딱딱한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궁금해 미치겠어.”
그가 그녀의 입술을 빨아 물려던 찰나, 이나가 고개를 돌렸다.
“잘됐네. 나도 바라던 바에요. 차라리 그게 편하겠어. 그리 대단한 몸은 아니지만 갖고 싶은 만큼 가져요. 그러다 보면 알게 되겠지. 내 몸이 얼마나 많은 손을 탔는지. 얼마나 음탕한지. 침대 위에서는 꽤 격정적이거든요. 그래서 남자들이 좋아했나? 나는 키스는 안 해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혓바닥을 물고 빨고 싶지는 않으니까. 섹스 행위 자체보다도 마음을 담은 키스 한 번이 여자에겐 더 가슴 떨리고 설레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당신 혓바닥하고 뒤엉켜 놀아 주고 싶지는 않네.”
그의 시선이 더욱 짙어졌다.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기억하지.”
그가 사납게 재킷을 벗기고 안에 입은 체크 셔츠의 깃을 잡아 무자비하게 확 뜯어 버렸다. 순식간에 단추가 튕겨 나가며 셔츠 사이가 벌어졌고, 속살이 드러났다. 청바지 버클을 풀어 엉덩이 아래로 내린 그가 그녀의 몸을 돌렸다. 쿵 소리가 날만큼 세게 벽으로 밀어붙인 그가 팬티마저 끌어내리며 브래지어 안으로 손을 넣어 말랑한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풍만한 젖가슴을 사정없이 주무르며 분홍빛 돌기를 잡아 비틀었다.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는 이로 지분거리며 뜨거운 숨결을 토해 냈다.
“하읏!”
크고 단단한 남성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리 사이로 진입했다. 벽을 짚고 서 있던 이나는 이를 앙다물었다. 그가 원하는 그 어떤 달뜬 소리도 내지 않을 것이다. 철썩철썩 하는 피부 마찰음이 넓은 공간을 메웠다. 어둡고 습한 동굴 안을 거침없이 휘젓고 다니던 남성을 빼낸 그가 그녀의 몸을 다시 돌려세웠다.
짧게 마주친 시선이 팽팽하게 오가고, 그가 그녀의 바지를 마저 벗겨 버린 채 다리 한쪽을 잡아들고는 다시금 남성을 밀어 넣었다. 질척이는 소음이 난무했고,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그녀의 다른 다리 한쪽마저 들어 올린 그가 엉덩이를 받쳤다. 서 있는 자세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꽉 움켜쥔 채 허리와 함께 움직였다.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칼이 공중에서 나풀거렸고, 격한 피스톤 운동으로 인해 그녀의 몸이 심하게 위아래로 들썩였다.
“하아, 하아.”
달뜬 그의 음성이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 끈적이는 타액이 묻은 말캉한 혀가 그녀의 귓불을 쓸고 가지런한 치아가 지분거리며 괴롭혔다. 여전히 그녀 안에 남성을 박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긴 그가 침대 위로 그녀를 뉘였다. 다리 한쪽을 어깨 위에 걸치고 지친 기색 없이 허리를 움직이는데, 그녀가 팔을 뻗더니 그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자세를 바꾸었다. 순식간에 위아래 자리가 바뀌어 버려 그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 그녀가 표정 없는 얼굴로 낮게 속삭였다.
“왠지 억울한데요. 당신한테 휘둘리니까. 기분이 엿 같아.”
그의 허리춤에 앉은 그녀가 높게 솟은 단단한 남성을 다리 사이로 깊숙이 삼켰다.
“아흑. 하아…….”
그가 몸을 움찔거리며 신음을 토해 냈다.
“이렇게 하면 남자들이 좋아하던데, 당신도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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