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그녀의 안락의자에 파묻혀 잠든 것을 보면 이따금 그때 생각이 났다. 뚜껑이 닫힌 상자들 곁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 그것은 자신을 상처 입은 세상을 향해 빗장을 지르고 잠들어 버린 그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어느날 아침 아내는 비명을 질렸다 '우리 집에서는 모든 게 말라 버려요!' 그녀의 손에 든 그릇 속에는 모래처럼 뻣뻣하게 마른 밥이 들어 있었다. 간장 접시 좀 보세요. 과연 간장은 죄다 증발해 버리고 검게 물든 소금 알갱이뿐이었다. 사과도 하룻밤만 지나면 쪼글쪼글해져요. 시멘크 벽이 수분을 다 빨아들이나 봐요. 이러다가 나도 말라비틀어질 거예요.자고 나면 내 몸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 몸이 삐그덕거리는 것 같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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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앓고 있습니다. 뜻밖의 수상 소식을 실감하는 데에 너무 많은 기력을 써버렸나 봅니다. 자다 깨다 하면서 수없이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모두 어딘가로 떠나려 하지만 헛되이 헤매기만 할 뿐 그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꿈이었습니다. 등에 밴 깃은땀이 거북하여 열도 식힐 겸 창문을 열었습니다.
--- 수상소감중
나는 터무니없이 결연하게 다짐한다. 그 다짐에 내 앞날이 걸려 있는 것처럼, 그런데 내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이 왠지 내 것 같지 않고 생소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텔레비젼이 때맞춰 궁금증을 풀어준다. 음 치토스 언젠가는 먹고 말 거야. 번번이 허탕을 치는 동물이 나와서 결연하게 다짐하고 있다. 이런 제길, 나는 맥이 풀린다. 다짐하나도 온전히 내 것일 수 없다니, 그 순간, 나는 생소한 노랫소리를 듣는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믿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 노래는 내 이비에서 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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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했다. 그것을 아내는 어떻게 갚아주었던가. 아마 지금쯤 그녀는 자고 있을 것이다. 약을 먹을 시간이 되면 깨어난다. 그리고 다시 잠들기 전까지 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나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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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열심히 밥을 먹었다. 다 먹은 다음 물을 가지러 냉장고로 갔다. 물쟁반을 들고 식탁으로 돌아온 그녀는 식탁 위를 보더니 갑자기 멈칫했다. 쟁반 위에 있던 물병과 유리컵을 내려놓고 거기에 자기의 빈 밥공기를 옮겨 담으며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언제 밥을 먹었죠?'
그 겨울은 우리 둘 다에게 몹시 힘들었다.
---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