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행 유로라인에 올라 운전사 뒷좌석에 떡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런데 자꾸 뒤통수가 뜨끈하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뒤통수는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누구냐, 누구? 날 쳐다보는 것… 혹시… 혹시… 미소년? 나는 일말의 기대를 걸고 시선의 방향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내 뒷자리 옆, 좌석 두 개를 다 차지하고 길게 누운 덩치 좋은 여자. 그녀가 활화산 같은 눈길을, 제법 입술까지 움찔거리며 유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도 그보다는 덜 절망적이었을 거다.
나중에 영국 유학생 후배에게 이 얘기를 했다.
“누나, 혹시 그때 차림새가 어땠어?”
“두건에 링 귀고리, 선글라스, 군복 점퍼… 그 정도?”
“누나가 하고 다닌 게 딱 레즈비언 코드였어.”
유럽은 남자는 남성미를 강조하고 여자는 섹시한 여성미를 강조하는 게 패션의 기본이란다. 가슴이 A컵에 배가 D컵일지라도, 허리가 45인치일지라도 여자라면 어깨가 끈으로 된 ‘탑’이나 ‘배꼽티’에 ‘골반바지’ 입는 게 당연한 거란다. 유니섹스 모드는 옛날에 한물갔고, 특히 여자들은 힙합 스타일처럼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 절대로 안 입는단다. 그렇기에 밀리터리나 힙합 등 성별이 애매해 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는 대부분 레즈비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한 여인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사랑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버스에 실려 도버 해협을 향해 한없이 달려갔다.
---pp. 277~278
누구여? 나와 봐 좀, 응? 이탈리아 남자들 죄다 꽃미남이라면서, 응? 근데 내 앞에 지나가는 저 고등어 버터 조림은 도대체 뭐냐고!!!
물론 취향 차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우리나라 여자들은 느끼한 남자 싫어하지 않나? 이탈리아 남자들 정말 느끼하던데. 손가락만 스쳐도 기름이 묻어날 것같이 말이지. 나는 ‘이탈리아 놈들이 잘생기긴 개뿔’이라는 나의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피렌체 대합실에 앉아 지나가는 이탈리아 남자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긴 시간 지나지 않아 ‘왜 저 고등어 버터 조림들이 잘생겨 보이는가’에 대한 이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남자들 상당히 스타일리시하다. 어쩜 그렇게 모델처럼 잘 입고 댕기는지. 헤어스타일이나 수염도 세련되게 잘 다듬고 다니더라. 또 몸이 다들 이쁘게 잘 나왔다. 넓은 어깨 좁은 허리 기나긴 다리에, 마른 듯하지만 근육 붙을 데는 알아서 탁탁 붙어 주신, 일명 ‘순정만화 체형’이라고 불리는 몸매다. 게다가 옆모습이 다들 조각이다. 콧날부터 인중, 입, 턱으로 내려가는 선들이 하나같이 배우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오케이. 여기까지다. 이탈리아 남자들이 멋있는 건.
앞으로 얼굴을 돌리고 선글라스를 벗으면, 하나같이 고등어가 된다. 이해 가나? 얼굴 형태가 유선형으로 앞으로 쑥 빠진데다 그 위로 코가 칼날같이 뻗어 있고, 눈이랑 입이 거기 모여 있는 얼굴. 두말할 것 없어. 전부 고등어다. 그것도 버터에 팍팍 무친 ‘고등어 버터 조림’.
백문이 불여일견. 이탈리아에 가 본 적이 있는 많은 여성들은 이에 동의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그 애들의 끗발 나는 몸차림과 옆모습에 반하지 않을 냉정함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 이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이탈리아에 대한 환상을 깨라는 것이다. 유럽 배낭여행을 꿈꾸는 많은 여성 분들께서 갖고 계신 바로 그 환상 말이다. 나처럼 너무 기대하고 가면 미남 천국은커녕 수족관만 보고 오게 될 테니 말이다.
그나마 고등어적인 매력도 젊었을 때 한철이다. 이탈리아 아기들은 다들 정말 예쁘지만, 열 살 언저리만 가도 다들 양아치 같고 스무 살쯤 되면 고등어가 되었다가, 마흔쯤 되면 두 가지 갈림길에 들어서게 된다. 대니 드 비토와 슈퍼 마리오. 짧고 벗겨지고 굵어지느냐, 아니면 빵모자에 콧수염에 배 나오느냐.
슈퍼 마리오 아저씨들에게 꼭 해 주고 싶었던 말을 마지막으로 나의 짧고도 강렬하고 젠장맞으면서도 아름다웠던 피렌체를 깔끔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헤이! 아저씨! 꽃 먹고 여기 벽 부숴 봐!!!!”
---pp. 8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