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만 해도 우리는 ‘공해’만 알았지, ‘환경’은 잘 몰랐다. 「창세기」 식으로 표현하자면, 공해는 환경을 낳고 환경은 생태를 낳았다. 다시 말해 새로운 세대의 언어가 전 세대의 언어를 극복하면서 그 의미가 넓어졌다. 공해, 환경, 생태 중 제일 먼저 나타난 말은 공해다. 시커먼 하늘, 썩어가는 강, 내동댕이쳐진 쓰레기 더미…… 공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런 것이다. 환경이라고 하면 이런 공해문제만을 얘기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환경은,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조건을 포괄한다. 환경은 이것저것 들어 있는 주머니처럼 낱개가 합해진 한 덩어리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연환경은 자연이라는 조건 안에 있는 어떤 덩어리다. 공해문제라고 할 때 우리 눈은 마지막으로 드러난 더러움만을 본다. 하지만 환경이 문제라고 하면 비로소 그 더러움을 만들어낸 과거, 더러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자연환경이라는 주머니의 구조적 문제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환경’이라는 말로도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근원적인 현상이 있다. 자연이 겪고 있는 문제는 눈에 보이는 ‘환경’보다 더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 생물들이 서로 맺고 있는 상호관계와 조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생물들이 서로 얽히고 물려 있는 관계, 그리고 지구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근본적인 작동원리들이 있다. ‘생태’는 이렇게 지구라는 주머니를 유지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 p.6~7
미생물학자인 린 마르굴리스는 서로 다른 종들이 협동을 통해서 진화했다는 증거를 마침내 찾아낸다. 마르굴리스가 찾아낸 대표적인 증거는 지구가 형성된 초창기에 등장한 생물인 원핵생물들의 협력이었다. 핵이 없는 단순한 생물인 원핵생물들은 지구 역사 초기에 오랫동안 지구에 살았던 유일한 생물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핵이 있는 진핵생물들이 나타나자 진화의 속도는 이전과 비교해 빛의 빠르기로 진행된다. 진핵생물이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양서류나 설치류, 파충류, 포유류의 탄생도 가능해졌다. 마르굴리스는 진핵생물이 원핵생물들의 협력품이라고 말한다. 핵이 없는 원핵생물들이 한몸에서 공생하다가 한쪽이 세포의 핵으로 살게 되어 진핵생물이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동물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속에는 세포핵과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마르굴리스에 따르면, 이 ‘핵’과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둘 다 독립적인 원핵생물이었는데, 진화 과정에서 ‘내부공생(endosymbiosis)’을 하여 한몸이 되었다. 이것은 순도 높은 전격적 협력이다. 마르굴리스에 따르면, 미토콘드리아는 자기를 복제할 수 있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데, 이 점이 바로 미토콘드리아도 예전에는 독립적인 몸체를 가진 생물이었다는 증거라고 한다. (…)
공진화와 내부공생, 집단선택 이론은 사회과학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공생, 호혜주의, 이타성, 협력은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어감으로 사회과학에서 인간의 제도와 도덕, 규범 같은 행태들을 설명하는 맥락에 사용된다.
--- p.256~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