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에게는 여러 해 동안 마음에 두고 구혼한 여자가 있었는데, 자신의 신분으로는 도저히 얻기 힘든 여자였기 때문에 결국 훔쳐 내기에 이르렀다. 남자는 기회를 틈타 무척 어두운 밤에 여자를 훔쳐 내어 도망친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아쿠타가와(芥河)라고 하는 강에 다다랐을 때, 여자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이슬을 보고 “저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지만 남자는 정신이 없어 대답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갈 길은 멀지만 밤도 깊은 데다가 번개도 격렬하게 치고 비도 심하게 내리므로, 남자는 도깨비가 있는 곳인지도 모르고 황폐한 곳간에 여자를 안쪽으로 밀어 넣고는 활과 전통을 메고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어서 밤이 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곳간 안에 있던 도깨비가 여자를 한입에 삼켜 버렸다. 여자가 “아아” 하고 소리쳤지만 번개 치는 소리에 남자는 듣지 못했다. 이윽고 날이 새어 남자가 곳간 안으로 들어가 보니 데리고 온 여자가 없다. 발을 구르며 울어 보지만 아무런 보람이 없다.
저 흰 구슬은 무엇이오 여자가 물어봤을 때
이슬이라 답하고 사라져 버릴 것을
이것은 이후의 니조 황후가 사촌인 여어(女御)를 시중들듯이 지내고 계실 때의 일로, 그 자태가 매우 아름다워 한 남자가 약탈해 도망가는 것을 오라버니인 호리카와 대신(堀河の大臣)과 장남 구니쓰네 대납언이 뒤쫓아 가 구한 일에서 연유한다. 대신과 대납언이 아직 낮은 관직으로 궁에 입궐할 때 심히 우는 여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뒤쫓아 가 가로막고 되찾아 오신 것이다. 그것을 이렇게 도깨비라고 말한 것이다. 황후도 아직 무척 젊고 보통 신분으로 계실 때의 일이라고 하더라.
---「제6단 아쿠타가와 강(芥河)」중에서
옛날, 한 남자가 특별한 목적도 없이 방랑하다가 마음이 이끌려 미치노쿠 지방(陸?の?)에 당도하게 되었다. 그곳에 사는 한 여자가 교토 사람은 만나기 힘든 존재라고 생각한 것인가, 한결같이 사모의 정을 품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그런 심정을 노래로 읊어 남자에게 보냈다.
서툰 사랑에 애타 죽는 일 없이 누에가 되면
좋겠소 아주 짧은 목숨이라고 해도
노래까지 촌스러웠다. 그래도 역시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던 것일까. 남자는 여자네 집으로 가서 하룻밤 잠을 잤다. 그런데 남자가 아직 날도 새지 않은 어두컴컴한 시간에 돌아가자 여자는,
날이 밝으면 저 망할 닭 물통에 처넣을 테다
밤이 새기도 전에 낭군을 보냈으니
라고 애정 담긴 노래를 읊었지만, 남자는 교토에 간다고 말하며,
구리하라의 아네하 소나무가 사람이라면
교토의 선물로서 데리고 가 줄 텐데
라고 읊어 보냈다. 그런데 여자는 노래의 의미를 잘못 해석해 기뻐하며 “그 사람은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나 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제14단 망할 닭(くたかけ))」중에서
옛날, 교토를 떠나 오랫동안 시골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아이들은 우물가에 나와 놀곤 했는데, 성인이 되자 남자도 또한 여자도 서로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남자는 이 여자를 꼭 아내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여자도 이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고 싶어 해서, 부모가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인근에 살고 있던 그 남자가 이런 노래를 읊어 보내왔다.
우물의 벽에 키를 맞추며 놀던 나의 신장도
우물보다 컸겠죠 보지 않은 사이에
筒井つの 井筒にかけし まろがたけ
過ぎにけらしな 妹見ざるまに
이 노래에 여자가 반가로,
길이 대 보던 가르마 탄 머리도 어깰 넘었소
그대 아니고 누가 올려 묶어 주리오
라고 읊어 보내는 등,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두 사람은 희망하던 대로 결혼을 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는 사이 여자가 부모를 잃어 생활이 곤궁해져 감에 따라, 남자는 이 여자와 같이 무기력하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 가와치 지방(河?の?) 다카야스 군(高安郡)에 새로운 처를 만들어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전 여자는 남자를 미워하는 내색도 하지 않고 보내 주는지라, 남자는 여자에게 자기 외에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가와치 지방에 가는 것처럼 꾸미고 마당의 나무 사이에 숨어 보았더니 여자는 무척 꼼꼼히 화장을 하고 시름에 잠겨,
바람이 불면 도적이 출몰하는 다쓰타 산을
이 밤중에 당신은 홀로 넘는 건가요
라고 읊는 것을 듣고 남자는 더없이 사랑스럽게 생각해 가와치 지방의 여자에게 가지 않게 되었다.
그 후 한참이 지난 후에 그 다카야스 군의 여자에게 가 보았더니,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품위 있게 치장을 하고 있던 여자가 지금은 완전히 긴장감이 풀어져, 스스로 주걱을 들고 그릇에 밥을 푸고 있는 것을 보고 남자는 넌더리가 나서 그 후로는 다니지 않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가와치의 여자는 야마토 쪽을 바라보며,
당신이 사시는 쪽을 바라보면서 살겠습니다
구름아 가리지 마 비가 내린다 해도
라고 읊조리며 밖을 내다보고 있으려니, 어느 날 야마토의 남자가 “그쪽으로 가겠다”는 편지를 전해 왔다. 여자는 기뻐하며 남자를 기다렸지만 남자는 오지 않고 몇 번이나 허무하게 시간이 지나가,
그대 오신다 전해 주신 밤들이 지나쳐 가니
기대하지 않지만 그리며 지냅니다
라고 읊어 보냈지만, 남자는 더 이상 찾아 주지 않았다.
---「제23단 우물 벽(筒井筒)」중에서
옛날,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낮은 신분이었지만 모친은 황족 출신이었다. 그 어머니는 나가오카(長岡)라는 곳에 살고 계셨다. 아들은 교토의 궁정에 출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있는 곳을 찾아뵈려고 해도 그리 자주 오지는 못했다. 더욱이 그 남자는 외아들이기도 해서 어머니가 무척 애지중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12월 무렵, 시급한 일이라 하며 어머니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놀라서 열어 보았더니 노래가 들어 있었다.
늙은 몸이라 피할 수 없는 이별 있다고 들으니
왠지 점점 더 보고 싶은 그대입니다
그 아들은 심히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읊었다.
이 세상 안에 피할 수 없는 이별 없는 것인가
천세를 기도하는 당신 자식을 위해
---「제84단 피할 수 없는 이별(さらぬ別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