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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을 넘어
중고도서

상흔을 넘어

여해름 | 가하 | 2011년 04월 1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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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4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470g | 128*188*30mm
ISBN13 9788993883527
ISBN10 8993883521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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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신은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열고 거센 비바람에 온몸을 경련시키는 창가로 움직였다. 그의 검은 시선이 꽂힌 어두컴컴한 밖은 우악스러운 폭우로 자지러지듯 울부짖는 모습이었다. 그 속에서 찰나처럼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 포착되었다.
그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눈살을 좁히며 주시했다.

‘빌어먹을!’

절로 욕설을 뱉고 다급히 발길을 돌렸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재를 나서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거센 폭우 속으로 뛰어들었다.
청도를 뒤덮은 폭우는 거짓말 않고 눈조차 쉽사리 뜨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어린아이라면 걸음도 내딛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딘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얼굴을 집어삼키는 빗물을 훔쳐내며 뒤뜰의 마구간 앞까지 뛰어갔다.
그곳에는 초록색의 우비를 걸친 그녀가 서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하신은 앞뒤 가리지 않고 윽박을 질렀다.
은교는 처마 밑의 돌돌 말아진 천막을 끌어내리려던 동작을 멈추며 그를 바라봤다.

“큰 도련님? ……왜 나오신 거예요?”

“너야말로 이 빗속에 뭘 하는 거야!”

하신은 오만 인상을 구기고 그녀의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천막을 거칠게 잡아챘다.
철푸덕.
천막이 길게 늘어뜨려졌다.
은교는 너무도 쉽게 내려와 버리는 천막을 보며 감탄스러운 눈빛을 드리웠다. 자신은 5분 동안을 쩔쩔맸던 일이었다.

“역시 사람은 키가 크고 볼 일인 거 같아요, 하하. 고맙습니다, 큰 도련님. 이젠 말뚝에 묶기만 하면 되겠어요.”

천막의 끝으로 달린 끈을 붙잡고 쇠말뚝에 휘감았다. 반대편의 것을 묶기 위해 몸을 일으키자 이미 그가 해치운 상태였다.

‘묶는 건 내가 해도 되는데.’

멀뚱히 서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를 지켜봤다. 그제야 그가 우비조차 입지 않은 상태임을 알아차렸다.

‘어떡해, 감기 드시겠다. ……도대체 왜 나오신 거야? 어떻게 해서든 혼자 했을 텐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신은 흥건하게 젖어버린 와이셔츠 밑으로 우람한 근육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그녀를 당장이라도 잡아먹어버릴 듯 노려보며 가냘픈 손목을 덥석 그러쥐었다.

“일단 비부터 피해.”

축축하게 젖은 그녀의 손목을 이끌고 즉각 이동해나갔다.
은교는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했다. 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든 비바람을 헤쳐 나가며 자신의 손목을 그러쥔 그의 모습에 난처함을 느꼈다. 머릿속은 무엇을 가늠하기가 힘들었고 심장은 요란한 폭우소리처럼 광란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그의 손을 밀어내려 애썼다.

“도련님, 먼저 뛰어가세요. 이러다가 감기 드시겠어요.”

그 순간.
휘이이잉! 걸음을 주춤할 만큼 드센 강풍이 그와 그녀를 덮쳤다. 그 때문에 그녀의 우비 모자가 휙! 벗겨져버렸다.
하신은 불쑥 그녀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휘청 끌려온 작은 몸뚱이를 옆구리로 밀착시키며 망설임 없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동시에 벗겨진 그녀의 모자를 씌워주고 커다란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달릴 수 있겠어?”

“……?”

은교는 그의 품에 갇혀버리며 모든 것이 아득할 뿐이었다.
하신은 멀찍이 보이는 현관을 바라보고 나직하게 일렀다.

“뛰자.”

그 즉시 그녀를 이끌며 내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현관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그는 야박할 정도로 그녀의 몸에서 손길을 거두고 무엇인가를 삭이듯 눈을 감았다.
은교는 가만히 모자를 벗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술을 달싹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도련님. 그리고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도련님의 몸이 모두 젖어버리셨어요. 지금 당장 목욕물을 받도록 할게요.”

황급히 우비를 벗었다.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으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비를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문지방을 넘었다.
그 찰나 그의 차가운 손길이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거칠게 몸을 돌려세웠다.
은교는 그의 얼음 같은 눈동자를 화들짝 올려다봤다.
하신은 그녀의 가녀린 팔뚝을 으스러뜨릴 양 그러쥐고 사뭇 고조된 음성을 쏘아붙였다.

“너 바보야?”

“……?”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천막 좀 안 내리면 어떻다고 이 빗속에 마구간엘 가 있어!”

“도련……님?”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나무 바닥을 응시하고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말들도 비를 피하게 해줘야…….”

“그러니까, 그걸 왜 꼭 네가 하느냐는 말이야?”

하신은 찰싹 눌어붙어 있는 와이셔츠 밑의 근육들을 들썩거리며 짜증스러운 입김을 쏟았다.
은교는 슬며시 눈을 들었다.

“저 말고는 할 사람이…….”

“나는 이 집 장승인가 보지? 우두커니 집만 지키는 장승! 꾳 불렀으면 됐잖아! 왜 말도 않고 그 빗속에…….”

그는 속이 미치게 답답한 나머지 말을 멈추고 시선을 틀어버렸다. 빗물에 젖은 얼굴을 신경질적으로 쓸어내리며 앞을 가로막은 그녀의 몸을 밀쳐냈다.

“그만 됐어. 들어가서 씻도록 해.”

“목욕물…….”

그녀는 말끝을 흐리고 뚜벅뚜벅 걸어가 버리는 그를 응시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며 냉담한 저음을 흘렸다.

“네 몸이나 챙겨.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만약 아프기라도 하면, 그땐 그냥 안 넘어갈 줄 알아.”

다시금 발길을 잇고 계단을 올랐다.
은교는 그의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그가 사라지며 휑한 공기만이 나도는 중에도 선뜻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하신, 나의 예쁜 큰 도련님. ……화를 내시는 모습이, 꼭 예전의 모습 같아.’

어릴 적의 그를 보고 있었다. 아련하게 입술을 떨며 눈을 감자 차갑기 그지없던 그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비쳤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그녀의 가슴 안으로는 응접실의 습한 공기가 아른아른 스며들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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