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교사라는 직업은 참 외로울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치이고 학부모에게 외면받는 때가 종종 있다. 학부모에게 담임교사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존재, 그래서 입시상담이나 학업상담은 물론 생활상담까지도 학원교사와 한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누가 가장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요?” 하고 한 번쯤 묻고 싶다.
하루에 수업을 여섯 시간 한다고 하고, 1년에 수업일수를 대략 200일이라고 한다면 1200시간이다. 그 시간을 아이는 학교에서 교사와 함께 보내는데, 아이의 모든 면모가 저절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별로 믿어주지 않을 때면 공연히 쓸쓸해진다.
교사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아이의 평가가 모두 일치하는데, 이제는 교사와 학부모가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인데, 왜 서로 모르고 있는지 답답했던 날들도 참 많았던 것 같다.
---「 아휴! 시원해요」중에서
나는 아이들이 급식실을 향해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뛰어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아이들은 로봇이 아니라 생의 기쁨과 의지가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니까. 학교에서 느끼는 기쁨이 별로 없는 아이들에게 본능에 따라 남아 있는 생존의 의지를 느끼면서 나는 참 다행이구나, 마음을 쓸어내린다. 언젠가는 철이 들고 한 사람 몫의 일을 하게 되겠지만, 그때까지 잘 가르쳐야지, 꼬깃꼬깃 꼬아진 갈댓잎 앞에서도 엄숙해졌다. 거미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니까. 나만의 비밀정원, 거미들이 갈댓잎을 얽어서 집을 짓는지 갈댓잎들이 끝에서 꼬부라지고 둘둘 말려 있다.
---「놀 줄 모르는 아이들」중에서
학교에서도 긴 시간 공부하고 왔을 텐데, 또 학원 의자에 앉아서, 무슨 머릿속이 저수지도 아닌데 듣고,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지겹지도 않을까? 나는 카페에 앉아서 긴 생각에 잠겼다.
정말 대학 잘 가야 행복할까?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다른 길은 한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한 번 없이, 그저 남이 달리니까 나도 달린다는 식의 무한경쟁. 그 속에서 길러야 할 인성은 언제나 뒤로 밀리는 것 같다.
능력이 되어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열 명이면 열 명 다 그럴 필요는 없다. 자기만의 능력을 키우고, 자기만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기르라고 학교 다니는 거지 대학 잘 가려고 학교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같으면 도대체 학교가 왜 있어야 하는지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가정도.
---「도대체 학교가 왜 있어야 하는 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