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로 한 세월을 살았다.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다가 가끔 산책을 하며 또 다른 세월을 보내고 있다. 편집부장과 문화부장, 섹션 에디터, 논설위원, 스포츠지 편집국장 등이 그가 지나온 이정표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들어 있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진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오늘의 그는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고전의 숲을 헤매며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 것도 그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그 과정에서 뒷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한비자에서 세상살이를 엿본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와 〈장자〉에서 인생살이를 엿본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바둑으로 인간수업을 풀어본 《고수》,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늙은 철학자가 전하는 마지막 말》이 그것이다.
1. 과거로부터 날아온 편지인 고사성어도 마찬가지다. 옛 사람들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태산준령 앞에서 호미를 든 심정으로 ‘고사성어’라는 편지 몇 개를 훑어보았다. 지천에 널려있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나에게 보내온 편지라니, 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 p311
2. 돈을 물건 다루듯 하고 있는가, 아니면 보물로 섬기고 있는가. 만약 돈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보물이 아니라 인생의 장애물일 뿐이다. 그러나 돈을 ‘아도물’이라며 물건처럼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부리지 못할 것은 없다. -p17
3. “가령 우리의 수명이 10년 더 연장됐다고 해도 우주의 영원 안에서는 똑같이 미미한 것이다. 이 무한에서 보면 모든 유한은 동등하다.” 《팡세》에 나오는 이 말은 《장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빼닮았다. 무한소의 경지에서 보면 귀하지 않은 게 없다. 더 깊이,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찮은 미물에도 우주의 신비가 깃들어 있다. - p68
4. 우공의 전설과 정위 새의 신화에는 그러한 인류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부단한 노력이 자자손손 이어져, 인간은 마침내 자신을 둘러싼 열악한 환경을 하나둘 극복해왔다. 가망 없는 일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은 어리석지만, 동시에 위대한 일이기도 하다. - p84
5. 《주역(周易)》에 나오는 ‘척확지굴(??之屈)’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척확’은 자벌레를 가리키는 한자이다.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다시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겨울에 칩거하는 것은 봄을 위하여 그 몸을 보존하는 것이다.” 자벌레의 안쓰러운 몸부림은 옛사람들에게 인생을 깨닫게 하는 시청각 교재였다. 한 사람의 고난은 다른 사람의 위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