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쯤이었다. 일타는 칠흑 같은 세상에 불을 켜는 심정으로 성냥을 그어 자신의 손에 붙였다. 그러자 붕대를 감은 손가락이 어둠을 밝히는 등처럼 활활 타올랐다. 붕대를 감지 않은 엄지가 뜨거울 뿐, 정작 타는 네 손가락은 따끈하고 얼얼한 느낌을 줄 따름이었다. 네 손가락에 대한 애착이 떨어져버린 탓인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손가락에 붙은 불이 산바람을 타고 일렁이며 기세 좋게 타올랐다. 불꽃이 촛농을 녹이며 춤을 추었다. 일타는 연비삼매에 빠져들었다. ‘손가락이라는 것도 고깃덩어리에 불과하구나. 멋지게 타는 고깃덩어리구나.’ 일타는 신심의 불꽃이 욕망과 집착과 삼독三毒을 붙잡아온 손가락을 태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손가락이야말로 욕망을 붙들고 집착을 붙들고 삼독을 붙들어온 화매禍媒였구나. 이 손가락이 없어짐으로 해서 나는 오늘부터 욕망과 집착과 삼독으로부터 자유로우리라.’ ---p.191
일타에게 마음의 큰 고비가 하나 닥쳤다. 1971년 해인사 대중들이 일타의 허락도 없이 주지로 선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일타는 방장인 성철을 찾아가 고사했다. “방장스님께서는 늘 우리 대중들에게 말씀하신 게 하나 있습니다.” “그기 뭐꼬.” “공부를 위해 중노릇해야지 사람노릇을 위해 중노릇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손가락을 연비한 저 같은 사람이 어찌 주지 소임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방장스님, 저는 달아날 주走 자, 갈 지之 자 주지를 하겠습니다.” “허허허.” 일타는 그날 바로 걸망을 매고 해인사를 떠나 잠적해버렸다. ---pp.311~312
고명인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해가 하나 떠 있는 듯했다. 이처럼 마음속이 환하게 밝았던 경험은 처음이었다. 귀속에서는 아직도 “고요히 앉아 내 마음을 궁구하니, 내게 있는 내 마음이 부처가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일타의 육성이 맴돌았다. “내 마음이 부처가 아니고 무엇인가.” 일타의 육성이 귀속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사무치고 골수에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화두를 들고 좌선하는 기분이 들었다. 삼매란 이런 것일까. 의식하는 것마다 환했으며 걸림이 사라진 듯했다. 법문 속에 나오는 어려운 한문의 단어들이 낯익은 듯했고, 즉심시불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임을 체험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연』이란 책자를 통하여 일타 스님을 다시 한 번 만나보면서 미소가 적은 자는 활짝 웃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이해와 용서가 부족한 사람은 아무리 분하고 억울하더라도 덕과 관용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제2의 일타 스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혜인 스님(동곡 일타 스님 문도 대표)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은사스님께서 즐겨 쓰시던 문수 게송이 낭랑하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스님의 삶은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이었습니다. 일타 큰스님의 일대기 『인연』이 그려내는 스님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모두 환희심을 내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혜국 스님(전국 선원수좌회 전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