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 자루를 손에 쥐는 순간 저는 자유를 얻습니다. 무엇이든 쓸 수 있고, 얼마든지 실패해도 좋은 자유, 손에 착지한 몽상을 얽매임 없이 써나갈 수 있는 자유를 말이지요. 이때 연필은 종이와 마찰을 일으켜 영혼에 불을 지피는 도구가 됩니다. 손아귀의 힘과 근육을 사용해 연필로 쓰면서 세상을 온몸으로 더듬어 파악해가는 것. 거기에는 어떤 과장도 허욕도 없습니다. 뜻밖의 운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오직 내가 쓸 수 있는 만큼만 종이에 드러나지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가능한 모험의 세계. 연필의 담백한 세계를 저는 오래도록 사랑해왔습니다. ---프롤로그: 연필을 사랑하는 이유
내가 필기구꽂이를 좀 더 세심하게 자주 살폈더라면 원목 연필의 가치를 좀 더 일찍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처럼 이미 지니고 있는데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이 얼마나 많을까. 둔했기에, 무심히 보아 넘겼기에 알아차리지 못한 내 안의 보석을 생각한다. 쉽게 힘들다고, 권태롭다고, 불운하다고 말하기 전에 우선 내가 무엇을 지녔는지부터 돌아볼 일이다. 마음의 눈과 귀를 열면 손때 묻은 연필 한 자루 속에도 경전이 들어앉아 있다. ---연필 한 자루에 경전 한 권
위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연필 깎는 소리나 도마질 소리, 또는 바느질이나 뜨개질 같은 일상적인 모습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혼자서 아파 누워 있을 때 다정한 친구가 찾아와 옆에서 책을 읽거나 부엌에서 먹일 만한 걸 만들기 위해 또각또각 도마질을 할 때, 그 속에서 일상의 다정한 속삭임을 발견하고 안도하곤 한다. 그것은 삶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응원가였다. ---시간을 건너는 소녀
스스로를 통렬하게 직시하고 자신의 초라함에 뜨거운 눈물을 흘려보는 시기를 일생에 한 번쯤 가져보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 그 시기를 통해 나머지 생의 방향을 정하고, 무엇에도 파괴되지 않는 단단한 자기애에 이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졌을 때 그 에너지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굶주림》과 몽당연필 한 자루
“손으로 직접 쓰다 보면 자신의 몸과 먼저 소통함으로써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나의 현재 좌표를 알아차리는 것. 여기서부터 정확한 현실 인식과 대안 모색이 시작된다. 알아차리는 순간, 격렬했던 최초의 충격은 진정되고 ‘좌절한 인간’에서 ‘행동하는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운을 얻는다.” ---연필의 가장 극적인 쓰임새 … 80쪽
햇살이 안개에 점령당했던 풍경을 다시 세상에 돌려줄 때, 연필을 쥐고 써나가던 내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다른 존재가 되고 싶지도 않고, 그 누구도 될 수 없다. 연필이라는 뗏목 위에서 나는 나 자신이었다. 오직 그 사실만이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내가 붙잡고 있는 유일한 밧줄이었다. ---연필로 뗏목 만들기
라디오가 라디오이기를 그치는 순간, 사방은 돌연한 침묵에 잠긴다. 들끓고 다정하고 수다스러웠던 세상이 갑자기 눈앞에서 훅 꺼진다. 뒤로 물러나 있던 고요와 여백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꺼번에 덮쳐온다. 앞이 캄캄하고 등이 오싹해지는 그런 정적은 아니다. 알맞게 데워진 아침 바다를 헤엄치는 느낌이랄까. 이때의 침묵은 생급스럽지만 반갑고 달콤하기도 하다. 세상을 실어왔던 라디오는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다. 그리고 나는 본다. 텅 빈 방 안에 라디오와 연필과 나만 남아 인생에서 이미 스쳐간 것,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들의 무게를 견디는 환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