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유로운 유머...
<월레스 앤 그로밋>은 느긋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그리고 웃음 뒤의 여운을 안겨주는 재미가 있다는 면에서 '세익스피어'와 흥겨운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캐릭터는 지독한 바보도, 그렇다고 사회에 대한 냉소주의자도 아니다.
그들은 일상을 중시하고, 친절하며 영리하다.
자신이 바보가 되거나 남을 바보로 만들지 않고도 웃을 수 있는 유머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겸손하고 여유로운 유머를 만끽하게 한다.
2. 스릴러 & 느와르...
새 입주자, 처음엔 친절하지만 점차 본색을 드러내면서 그가 곧 평화의 파괴자임이 밝혀진다. 또 마음이 끌린 연인에게 불길한 어두운 구석이 있고 범죄가 뒤따른다.
이처럼 이 작품은 현대 스릴러물의 볼거리를 보기 좋게 짜집기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보그 개 프레스톤이 커튼 뒤에서 주인공들을 감시하는 장면이나 펭귄을 뒤쫓던 그로밋이 상자에 숨었을 때의 연출 등은 전형적인 히치코크의 기법이다.
엿보기, 뒷골목, 우연한 마주침, 어두운 그림자의 여주인공, 그리고 그녀와의 아슬아슬한 로맨스 등은 '느와르'를 구성하는 전형적 소재들이다.
3. 스펙타클의 전통...
닉 파크 감독은 스피디하고 규모가 큰 액션에 익숙한 팬들을 위하여 매 편의 클라이 막스에 볼만한 눈요기를 빼놓지 않았다.
<전자바지 소동>에서 보여준 장난감 열차 추격씬은 세계 애니메이션 명 장면을 언급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는 장면으로 실사에서도 잡아내기 힘든 고난도의 액션 연출이다. <양털 도둑>에서는 더욱 진일보한 추격씬이 벌어진다.
이 장면에 대한 설멍은 비밀! 힌트라면 아마도 감독은 '배트카'나 제임스 본드의 자동차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면서 더 우월한 실력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4. 동물과의 교감...
고전인 <명견 래시>에서부터 70년대의 <벤지> 그 이후로 <늑대개>
<베토벤> 최근의 <101달마시안>까지 개가 나오는 영화는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으로 헐리우드에선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주인과 충직한 개의 교감을 다룬 것으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오수의 개' 이야기에서부터 최근의 국산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두치와 뿌꾸> 그리고 세진 컴퓨터의 '진돗개'까지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월레스 앤 그로밋> 또한 월레스와 그의 개 그로밋 간의 우정과 연대감을 연대감을 기초로 한 작품으로 그들이 보여주는 정서는 인간간에 맺는 어떤 관계 보다도 더 따뜻해서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5, 패러디 감각...
<월레스 앤 그로밋>의 닉 파크 감독은 대단한 영화광일뿐더러 다양한 문화적
소양과 해박한 지식을 갖춘 인물로 짐작된다. 이 작품에서 그는 영화사를 섭렵한 듯이 무수한 작가들의 연출 기법과 시퀀스 등을 '고의로' 모방하고 있다.
스토리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장르들의 뒤섞음은 그 내용만으로 영화의 경향을 단정할 수 없을 정도로 종횡무진한다.
멜로에서 스릴러로, 다시 SF, 액션이 반복되며 관객을 몰아붙이다가는 또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코미디로 돌아서기도 한다. <월레스 앤 그로밋>의 패러디 감각은 연출이나 스토리에서 뿐만이 아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미장센, 음악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전자바지 소동>에서 펭귄이 등장했을 때 아이러니 하게도 열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남태평양>의 히트곡 '해피 토크'가 흐르는 것 등은 관객이 자칫 놓치기 쉬운 퍼즐이다.
또 가출하는 그로밋의 개집 내부 풍경은 개가 등장하는 만화 중에선 가장 유명한 슐츠의 <스누피>를 패러디하고 있다. 이밖에도 꼼꼼히 짜여진 퍼즐같은 이 영화의 원본들을 찾아내는 것은 관객에게 제공하는 닉 파크의 또다른 엔터테인먼트가 될 것이다.
6, 수공예풍의 SF...
카메론과, 스필버그의 현란한 특수 효과보다는 마치 3류 발명가가 만든, 테크닉보다는 아트에 가까운 기계 장치들에 매혹을 느끼는 영화팬이라면 <월레스 앤 그로밋>을 권하겠다.
월레스의 아침을 장식하는 기관 장치들은 <델리카트슨>에서 자살을 계획하는 부인의 연속 장치보다 재미있고, 위험하지도 않으며, 또 월레스의 공작실 모습은 팀 버튼이 <가위손>에서 보여주었던 기계장치들 못지 않게 스펙타클하다.
특히 <화려한 외출>에 등장하는 못과 판자로 만든 그 고색창연한 로케트는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