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결정도 잘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의 본질은 어떤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렸을 때 따르는 결과에 대한 책임감보다, 결과를 두고 세간에서 오르내리는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크다. 이들에게 있어, 그건 마치, 쇠사슬에 온통 묶인 채 발가벗긴 채로 거꾸로 매달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 이것이 바로 굴욕감이다. _(23쪽)
인간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존엄을 향한 갈망보다 힘과 통제력에 대한 갈망에 먼저 눈뜬다는 사실이다.
_(25쪽)
정신의학적 견지에서 보아도 어머니 마음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아이의 타고난 심성을 헌신과 보살핌으로 최대한 존중하며 양육하려는 어머니 마음과 부모의 미숙한 인격 탓에 오로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아이를 DIY 재료 정도로 여기고 3D 프린터로 찍어내듯 부모의 요구대로 만들어 가는 마음도 있다. 부모에게 어쩔 수 없이 매달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영유아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_(30쪽)
우리 모두가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코드를 갖고 세상에 태어났으면 오죽 좋으련만, 조물주는 기어이 자신감(?m感)이란 소스코드를 ‘기본’이 아닌 추후 모성이란 서버와 접속해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옵션’ 사양으로 정해 놓았다. _(36쪽)
첫사랑의 실상은 끔찍하다. 오만 가지의 서운함과 오해, 욕정과 불안에 며칠 밤을 뒤척이게 만든다. 이성을 향한 폄하와 욕정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다. 상대를 향한 폄하는 걷잡을 수 없는 욕정의 불길을 통제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화벽이기 때문이다. 서운함과 오해로 얼룩진 나날들을 보내며 아옹다옹하지만 그들의 밀고 당김 속엔 성취감과 상실감의 공식이 숨어 있다. _(44쪽)
불행하게도, 통제력과 우월에 대한 갈망이 지나치면 사랑이 머물 자리는 없다. 위기에 처한 공주와 그녀를 구해야만 하는 백마 탄 왕자님이 등장하는 동화와 소설 덕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엔 언제나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고 사랑해주는 남자에 대한 환상이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의 사랑은 꼭 그렇지 만은 않기에, 연애 초보자들은 이내 곧 대혼란에 빠진다. 문제는 “내 남자가 동화 속 왕자님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보니, 아마 난 동화 속 공주처럼 예쁘지 않나 봐!”라며 자신을 혹사시킨다는 점이다. 스킨케어 숍이나 성형외과를 불티나게 가는 이유다.
_(53쪽)
굳이 비유를 들자면, 남자에게 있어 섹스란, 너무너무 귀여운 아가의 볼에 뽀뽀해주고 싶은 심정에, 페르시안 친칠라가 반짝이는 눈망울로 쓰다듬어달라고 할 때의 격정,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와인 혹은 푸딩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흥분, 거기다 몇 십 캐럿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가락에 꼈을 때의 황홀을 에스프레소 잔에 담아 원샷한 후 차오르는 쾌감 같은 것이다. _(62쪽)
공기란 그것이 없는 우주 공간에 있어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존재다. 숨 막혀 봐야 공기 혹은 기도의 소중함을 깨닫는 게 사람이다. 마음의 경계 역시 상실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안다. 자해를 반복하는 것도 이런 배경으로 진행된다. 자신의 몸에서 뜨거운 피가 분출하는 것을 보거나 통증을 느낌으로써 자신의 경계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확인 강박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살아 있음을 느끼고픈 존재론적 갈망(Ontological need)이다. _(97쪽)
무력감은 더 이상 우리가 우리 몸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극단의 멘붕 상태를 초래한다. 그래서 마음은 대략 세 가지의 응급 모드로 전환한다. 아예 몸을 탈출해버리는 유체이탈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거나, 이와 정 반대로 커튼 뒤에 숨겨진 ‘초자연적’ 존재를 부활시키거나, 맥북에서 부트 캠프를 활용하듯 아예 다른 운영체제를 작동시키기는 것이 바로 그러한 예들이다. 정신의학에선 전자를 이인증(DEPERSONALIZATION)으로,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을 각각 빙의(POSSESSION) 혹은 다중 인격(MULTIPLE PERSONALITY)으로 칭한다. _(110쪽)
자신을 들여다보려면 먼저 세상을 직접 보고 듣고 만져봐야 한다. 그런 기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세상을 누비며 여행하는 기회가 적을수록 어림짐작으로 단정 짓게 된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제아무리 뉴턴의 고전적 물리공식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까지 합쳐서 계산해도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 설사 예측 가능할지언정 우리네 마음이 거기에 정비례해 더 행복해지라는 보장도 없다. _(172쪽)
응원 댓글과 악성 댓글은 그저 우월을 향한 태도가 호혜적이냐 착취적("(r)이냐로 나뉠 뿐. 본질의 차이는 없다. SNS에서 좋아하는 유명인을 친구신청 혹은 팔로워하며 열렬히 응원하고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과 상대를 비방 및 폄하하는 것 모두 내용만 다를 뿐 우월을 향한 연결고리를 갖고 싶은 심리에서 우러나온 것이란 본질은 같은 것이다. _(178쪽)
춘향은 퇴기 월매의 딸이며 몽룡은 남원 부사의 아들이다. 춘향이 잠재적 성적 코드라면 몽룡은 잠재적 권력 코드다. 성과 권력. 이 둘은 남녀가 성장하면서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누고 유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어느 정도 성적 매력이 있어야 서로 끌려 만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힘이 있어야 남녀 한 쌍을 포함, 가족의 생계를 유지,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양귀비에 얽힌 이야기나 힘에 대한 갈망을 서술한 니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둘은 소위 ‘역겹지만 통속적인 성공으로 일컬어지는’ 상태에 도달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들이 되어주기도 한다. 인류 보편적인 갈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경계해야할 대상인 것이다. _(181쪽)
건강한 사람은 삶의 의미에서 희열을 느끼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간다. 반면 욕망의 충족과 긴장의 방출이 주는 쾌락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채울 수 없는 갈증의 노예로 전락되어 오로지 생존만 바라보며 존재한다. 그들에게 있어 불안은 그저 ‘오늘도 무사히’ 살아남게 해주는 어설픈 땔감일 뿐 아니라 소멸과 죽음을 못 보게 만드는 안대에 불과하다. _(201쪽)
배려는 나약하고 모순적이며 자기기만에 빠져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베풀 수 있는 가장 초월적인 태도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배려에도 불구, 인류의 역사상 완전무결한 명랑사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인간의 배려가 불완전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인간의 배려는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상처를 ‘주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