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웅장한 고백도, 대단한 찬사도 아니고, 사랑해,나 잘 자, 같은 흔한 말도 괜찮아, 같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도 아니다. 밤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응, 그래가지고?” - 가장 듣고 싶은 말(p.18)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보다 서운해, 라는 말을 자주 한다면, 그는 스스로가 속상해질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서운하다는 말을 듣는 밤이면 그 말 속에 담겨 있는 애정의 크기에 어느새 배가 부르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서운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밤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커져버린 사랑 때문에 벅찬 심정이 된다. - 너한테 서운하다(p.23)
나는 누군가를 칭찬하고 싶다면 꼭 밤에 한다. 멋쩍은 말을 멋쩍은 시간에 꺼내는 멋쩍은 행동을 감수하고서라도 마치 숨겨둔 선물을 꺼내듯 상대에게 건넨다. 그 갑작스러운 칭찬에 누군가는 당황하고 누군가는 야릇한 표정을 짓고 누군가는 그저 얼굴을 잠깐 붉히고 말겠지만, 칭찬을 들은 그 순간의 기분만큼은 좀처럼 잊히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칭찬은 밤에 하는 것(p.49)
그렇게 욕조에 물을 받고 그 안에 몸을 누이는 것으로 몇 번의 밤을 버텨왔는지 모른다. 뜨거운 물 안에 얼굴과 머리칼을 빠뜨리며 숨을 참고, 분홍색으로 변한 손과 다리를 쳐다보며 얼굴에 묻은 물방울을 털고, 서늘해지는 몸에 타월을 감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면서 마음의 무게를 줄여갔다. 아무리 힘든 하루였더라도 방 안을 가득 채운 좋은 냄새를 맡으며 맥주를 마시고, 스르르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평소와 다르게 좋은 잠을 잔다. 걱정도, 꿈도 없이 단잠을 잘 수 있다. - 욕조의 조건(pp.181∼182)
집 앞에 단골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내 지정석이 있었으면 좋겠다. 계산하는 곳 바로 앞, 사장님이 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 카운터 바로 맞은편 자리가 내 자리였으면 좋겠다. 혼자 가도 사장님의 지인으로 보여 멋쩍지 않고,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계산하는 과정도 최대한 짧게 끝낼 수 있는 자리. 밤이 되면 집으로 가는 대신 그곳으로 퇴근해서 진토닉을 마실 것이다. 만화책을 읽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유튜브를 보며 낄낄거릴 것이다. 가끔은 콜라만 주문하면서 금주를 결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바의 단골이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닌 바 의자 때문이다. - 바 Bar 의자 구함(p.212)
꼭 전하고 싶은 마음일수록 밤이 되어서야 꺼낼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늦은 밤이 되면 없는 자신감을 짜내고 울렁거리는 두근거림을 다독여가며 전화기를 든다. 최대한 산뜻하게 인사를 건네고 문득 생각나서 걸었다는 듯이 대화를 시작한다. 결코 자연스럽지 않게 이어지는 전화를 끊고 난 후 만족감보다 후회가 밀려오더라도 별일 아니었다고 위로하며 애써 잠을 청하거나 한참을 뒤척이거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