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 김종국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서 출생하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2세부터 철학의 심오함에 빠져 연구를 시작으로 27세에 <남경 김종국 철학관>을 개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직 외길만을 걸어오며 사주학에 관한 어렵고 난해한 문제를 체계화시켰으며 현재 부산시 서구 충무동 1가에서 <남경 김종국철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음지의 운명을 양지로 바꾸는 『사주선생』, 사주선생의 명리학 이야기 『격국용신론』, 사주 추명 필수 『백문백답』, 사주선생의 『팔언독가』 등이 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한 여인이 찾아왔다. 그때만 해도 전기세가 아까웠는지 아니면 무식하게 용감하여 에어컨은 나에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감히 생각도 못하던 때였다. 물론 형편이 안 되어 에어컨을 장만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단지 나는 특유의 옹고집으로 더위를 즐겼는지도 모른다.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해도 이 똥고집은 문제가 좀 있었다. 땀을 흘리며 들어오는 젊은 여인의 모습은 한눈에 보아도 많이도 지쳐 보였다. 몹시도 울먹이고 난 후였는지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많이 부어 있었다. 그 젊은 여인은 어머니와 같이 왔는데 나에게 사주를 하나 봐달라고 하였다.
그분이 신생아 생일을 넣어주어 사주를 잡아본 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사주에 재가 너무 많고 인수가 파극되어 있어서 이 사주는 틀림없이 부모를 극하는 사주였다. 그래서 부친과 이별이요, 모와 이별이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내가 모에게 물어보니 그 모친이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 그 시가 좋다 하여 받아서 낳은 사주입니다.” 주위에서 그 사주가 좋다고 그 사주를 택했다고 하였다. 나는 순간 현기증을 느끼며 가슴에 불이 용틀임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옛날 말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설익은 무당이 귀신을 쫓는다고 칼춤을 추다가 오히려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단편적으로 보면 사주에 재가 많으면 좋을 것 같지만 재가 많으면 오히려 부친을 극하게 되어 있다. 고로 이 사주는 출생 후 가산이 풍비박산 나고 부친은 역마에 앉아 있어 집을 나갔으며 모는 그 후유증으로 신경쇠약을 앓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는 어째서 이 사주가 나오자 그 집이 그렇게 되었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