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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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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 김별아 장편소설

김별아 | 해냄 | 2014년 09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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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9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422g | 135*194*20mm
ISBN13 9788965744580
ISBN10 89657445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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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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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타인의 시선이다. 남들이 우러를 만큼, 부러워 시새워할 만큼 가지고 누려야 마땅하다.
미친놈이라 불리며 종놈처럼 취급받고 자란 오라비는 사족(士族)의 딸과 혼인했다. 속사정을 모르는 남들의 눈에야 귀공자와 귀공녀의 향기롭고 아름다운 인연이었다. 독사는 허물을 벗어도 독사이니 언젠가 미친놈의 본색이 드러나 귀공녀를 미친년으로 만들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당장은 그 성대한 예식과 호화로운 혼수가 장안 말꾸러기들의 화제가 되었다.
그녀도 빨리 혼인하고 싶었다. 혼인과 그 후의 생활에는 눈곱만큼의 기대가 없었음에도 그러했다. 혼인에 대한 일말의 헛꿈마저 가심질해 준 어미와 아비, 그들의 불행과 얼크러져 뒹구는 송곳방석 같은 대궐집에서 하루바삐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영천군 댁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아비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그녀는 내심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다!
“영천군이라면 태종대왕의 차남이시요, 세종대왕의 중형이시요, 세조대왕의 백부이신 효령대군의 자제가 아닌가? 그럼 종실에서 우리 딸을 며느리로 맞겠다는 겐가?”
어미가 반색을 하며 버썩 다가앉았다. ---「반짝임에 홀리다」

“넌 불행하지 않아.”
여인의 얼굴색이 다시 의혹으로 미묘해졌다. 흔들리는 그것에 못을 박으려는 기세로, 그녀는 목울대를 세워 또박또박 말했다.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거야. 남들이 쳐놓은 어둠의 그물에 갇혀 있지 않을 테니까. 누더기 먹옷 같은 기억 따윈 벗어버려.”
여인의 눈빛이 견고해졌다. 이곳이 바닥이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그 차갑고 딱딱한 진실이 위로이자 의지가 되었다.
“너는 이제까지의 어우동이 아니야.”
그녀가 여인의 검은 시간을 향해 말했다. 검은 것은 어둠이다. 검은 것은 침묵이다. 검은 것은 죽음이다. 살아 왁자지껄 빛나는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휘장이다. 색이 사라진 세상, 오직 옅거나 짙을 뿐인 흑백의 절망에 복종할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네 이름은 현비(玄非)야.”
세상의 모든 빛깔을 품은 채 검지만 검지 아니할 것이다. 검지 아니하다, 검을 수 없다. 여인과 그녀가 함께 웃었다. 기억을 살해한 자답게 잔인하게, 황홀하게.
---「검지 아니하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비를 잃은 핏덩이를 이 같은 왕의 재목으로 길러낸 사람은 어미인 한씨였다. 비록 남편인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자질과 포부를 드러낼 기회를 놓쳤으나, 여인으로는 드물게 경전과 사서를 두루 읽은 규수였다. 그녀는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십이 년 만에 궁으로 들어왔고 잃었던 시호를 한꺼번에 되찾았다.

이로써 신왕은 세 명의 대비를 모시게 되었다. 예종의 계비이자 제안대군의 어머니인 인혜왕대비 한씨, 임금의 어머니인 인수왕대비 한씨, 그리고 두 대비의 시어머니인 자성대왕대비 윤씨였다. 신숙주를 비롯한 재상들이 옛 고사와 신민의 여망을 명분 삼아 어린 왕이 장성할 때까지 대왕대비가 수렴청정할 것을 계청하니, 대왕대비는 두세 번 사양하다가 마침내 허락하였다.
그때 그날의 대비와 재상들은 뭔가 바빴다. 조선 개국 이래 선왕 사후에 후계가 즉위한 경우는 세종대왕이 붕어한 지 닷새 뒤에 문종이 즉위한 것과 문종이 붕어한 지 나흘 뒤 단종이 즉위한 사례가 있었다. 선왕이 붕어한 바로 그날 신왕이 즉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자을산군은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도량이 웅위한 것과 더불어 중신 중의 중신인 상당군 한명회의 사위였으니, 바야흐로 범에게 날개가 돋친 격이었다.
이제 그 호랑이가 조선의 왕이었다. ---「현곤(玄袞)의 세상, 하나」

이기는 이난과 달리 몸도 마음도 머무르지 않는 사내였다. 그러하기에 이기는 그녀의 괴상한 청을 뿌리치지 않았다. 애당초 그녀의 기질이 특이함에 매료되었으므로 도리어 기뻐하며 즐거워하기까지 하였다. 이로써 그녀는 이기의 후원을 받아 기생 행세를 하며 세상의 밑바닥을 구경하게 되었다.
“어떠하냐? 혜인 박씨로 사는 것과 기생 현비로 사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재미있느냐?”
“당연히 내 멋대로 마구발방하며 살 수 있는 기생이 더 재미나지요. 세상 구경 사내 구경이 얼마나 쏠쏠한지요. 거기가 바로 별천지더군요!”
“어라, 계집이 아니라 꼭 사내처럼 말하는구나!”
“사내만 계집을 고르라는 법이 있습니까? 영악하게 조(操)를 써서 낙점도 하고 퇴짜도 놓지요.”
“그럼 기생 현비로서 대발(戴髮)도 하였나? 그 억세게 운 좋은 놈이 누구란 말이냐?”
“지금 혹시 강샘을 부리시는 겝니까?”
“허허, 나도 모르게 좀팽이 짓을 했구먼. 옛말에 배가 많다고 하여 길이 막히지는 않는다 했거늘!” ---「허(虛)를 엿보다」

임금은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침착하게 숙고했다. 하지만 무거운 곤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쓴 임금 속의 소년은 체념과 분노, 갈등과 무력감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다. (……)
한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소년도 그렇게 던지고 싶었다. 백발이 성성한 신하들 앞에서 말 마디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지적받는 대신 그림자처럼 바보처럼 운명 앞에 자신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임금은 하늘의 대리자였다.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왕도에 어긋나지 않게 치화해야 했다. 대왕대비는 물러나고 원상들은 늙었지만 거리낌 없이 마음껏 놀고 싶은 아이를 감시하는 마음속의 눈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잠깐이나마 격식과 예법에서 벗어나면 호되게 야단치는 마음속의 목소리도 여전하였다.
그리하여 마음속 깊은 곳의 소년과 갈등할수록 임금의 태도는 강경해졌다. 머리로 가슴을 이기기 위해 더욱 단호하고 선명해졌다. 점차로 강력해지는 법과 도덕은 임금의 승리이자 소년의 패배였다. ---「현곤의 세상, 둘」

매일 태어나는 길, 새롭게 순결해지는 길을 밟아 밤마을에 나섰다. 딸아이 번좌가 말이 트이면서 매양 어미를 찾아대는 통에 낮에 집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진 터였다. 잠시 바람을 쐬러 나섰다가도 마음이 부대껴 서둘러 귀가하곤 하였다. 그녀는 어떤 어미가 좋은 어미인지 알지 못했다. 여태껏 어미도 아비도 갖지 못한 고아처럼 외로움의 빈 젖을 빨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번좌의 입에서 뭉개진 발음으로 새어 나온 ‘엄마’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감격하기보다는 당황했다. 낯선 운명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어리떨떨했다. 탯줄에서 다시 탯줄로 이어진 끈질기고 척척한 인연……. 그녀는 찌르듯 아픈 죄책감과 더 멀리 도망치고만 싶은 충동을 동시에 느꼈다.
낮의 그녀와 밤의 그녀가 달랐다. 어미인 그녀와 계집인 그녀가 달랐다. 한 몸에 두 마음이 세 들어 사는 듯, 한 마음이 두 몸으로 나눠 사는 듯도 하였다. 그녀는 분열되었다. 하지만 발광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어미의 마음이 깃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뜨거운 몸을 포기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녀는 종내 인정하고 말았다. 그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그녀임을.
---「밤을 밟다」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고관대작인 박윤충과 부유한 세족 출신의 정씨 사이에서 태어난 어우동은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악다구니와 증오가 가득한 집안에서 자라면서 관계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는다. 하루빨리 혼인하여 집을 떠나고 싶어 하던 중 왕실의 종친인 영천군 댁에서 혼담이 들어오고, 서자인 태강수 이동과 혼인하여 ‘혜인(惠人)’이라는 봉작을 받는다. 그러나 기생 연경비에게 푹 빠져 있던 이동은 어우동이 집에 일하러 온 은장이[銀匠]를 내실로 끌어들였다는 누명을 씌워 소박을 놓고, 재결합하라는 왕명도 듣지 않는다.
이에 어우동은 스스로 ‘현비(玄非)’라 이름 붙이고 그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여종 장미는 사헌부 아전 오종년을 소개하며 새로운 삶을 보여주고, 이후 어우동은 방산수 이난, 수산수 이기 등을 만나며 유교적 허위의식 아래 감춰둔 상처와 열등감의 맨얼굴을 확인한다.
한편 사가에서 살고 있던 자을산군은 예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열세 살에 왕위에 올라 성종이 된다. 과부인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을 받은 그는 어머니의 뜻, 임금의 길인 도덕과 윤리를 내면화했지만,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어린 소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두 마음이 대립하면서 오히려 자신과 타인에게 더욱 엄격해지고 격식과 예법을 점점 더 강화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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